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반란을 중단했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만큼 반란의 결과 자체보다 러시아의 핵무기 통제권이 흔들릴지 여부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핵무기가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러시아의 핵 태세에 변화가 감지되지 않으며 우리도 미국의 핵 태세를 바꾸지 않았다”며 “매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이 이처럼 말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부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제 사회를 향한 핵 위협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이 자신의 통제력을 보여주기 위해 더 극단적인 조처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고전할 때마다 핵전쟁을 언급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등의 최대 관심사도 러시아의 핵무기 통제권이다. 매슈 번 하버드대 교수는 “이번 반란은 핵보유국들이 미래에도 안전하게 핵무기를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전역에 핵탄두가 배치돼 있어 내분이 일어나면 핵 통제권이 푸틴 대통령의 손을 떠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갑자기 멈춘 것도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WSJ는 프리고진의 궁극적인 목표가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정부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었는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테러범과 결코 협상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이 반란을 멈추는 대가로 프리고진을 처벌하지 않는 데 동의한 점도 의문을 낳고 있다. 프리고진이 푸틴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협상력에 힘을 싣기에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하더라도 암살 위협을 피해 이른 시일 안에 다른 국가로 거처를 옮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당초 합의와 달리 러시아 사법당국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을 취소하지 않은 채 관련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푸틴 대통령은 반란 중단을 중재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통화했다.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벨라루스로 망명하기로 한 프리고진에 대한 후속 조처를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다음달 11~12일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NATO 정상회의에서 이번 러시아 반란 사태가 우크라이나 전황에 미칠 영향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는 안보 문제를 강조하며 NATO 가입의 필요성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고 러시아 반란 사태 이후 전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러시아 국방부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 있는 자국 군부대를 방문하는 영상을 26일 공개했다. 쇼이구 장관은 프리고진과 반목한 인물로, 바그너그룹 반란의 원인 제공자로 꼽힌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