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다. 저녁 먹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며칠 전 종로2가에는 왜 갔느냐?”고 물었다. 찔끔했다. 당시에 여러 명이 제과점과 음악감상실을 들르며 무교동, 명동 일대를 늦게까지 우르르 쏘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갔던 거는 분명하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지금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숟가락을 소리 내 탁자에 내려놓고 나를 꿇어 앉혔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은 삶이 아니다”고 말문을 연 아버지는 오래 나무랐다. “그날 예닐곱 명이 교복 입고 크라운제과점에 들어가는 걸 내 눈으로 봤다. 멀리서 봤지만, 내 자식이어서 얼른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이야 그렇다 치고 기억도 못 하는 날을 보내는 네가 한심하다. 주는 밥 먹고 아무 데나 뒹굴다 잠이나 자는 개나 돼지와 다를 게 뭐냐?”며 질타했다. “그건 다만 살아있는 거지 사는 게 아니다. 의미 없이 보낸 날은 삶이 아니다. 생존이지 인생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의미’를 먼저 설명했다. “‘뜻 의(意)’자는 ‘소리 음(音)’ 자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뜻’이나 ‘의미’, ‘생각’이라는 뜻을 가졌다. 곧 ‘마음의 소리’라는 뜻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의미 없는 날’은 네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보낸 날이다. 뜻이 있으면 훗날에 반드시 기억나야 한다. 의(意)자는 훗날 기억, 회억이란 말에도 고루 쓰여 그 뜻을 확실하게 해준다. 의미 없이 보낸 날은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낭비된 거다”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이어 “매년 오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네가 의미를 주지 않으면 그저 같은 날일 뿐이다. 그렇게 살았다면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은 네가 어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고 오늘도 그렇게 무의미하게 지낸다면 내일의 네 인생이란 기억조차 없을 거다”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날 더 크게 질책한 말씀은 평생 내 머리를 붙잡는다. “너는 어디 있느냐?”고 물은 아버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예외 없이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부화뇌동은 우렛소리에 맞춰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으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말이다. 번개 칠 때 퍼져나가는 소리가 천둥이다. 한자어 천동(天動)에서 온 천둥의 순우리말이 우레다. ‘울다’에서 온 말이다. ‘우뢰(雨雷)’는 틀린 말이다. ‘뇌동’은 우레가 울리면 만물도 이에 따라 울린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고 부화하는 것을 비유한다. 부화(附和)는 주견 없이 경솔하게 남의 말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온다. 원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라. 옛 성현들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아버지는 “우레가 치면 만물이 따라 울리니 휩쓸릴 수 있다. 따라 울리는 게 동조성(同調性)이다. 그럴 때일수록 나를 찾아야 한다. 그 울림 안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옳게 판단해 의미 있게 행동해야 한다. 네가 없는 인생은 그들이나 저들의 인생이지 네 인생이 아니다. 그래야 한 번뿐인 네 인생이 뜻 있게 되고 당연히 기억에 남는다. 부화는 네 인생에 대한 모독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삶의 낭비는 죄악이다. 뇌동은 하되 부화하지 마라”며 다짐받고 나서야 그날 밤 꾸지람을 끝냈다.
경쾌한 노래에 맞춰 제 또래들보다 더 마음껏 뛰노는 손주들을 보면 급격하게 자란 동조성에 안도한다. 그러나 까다로운 아버지의 가르침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 물려줄지는 고민이다. 기억이 시작될 나이 때부터 익히게 해야 할 성품이니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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