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라면업계가 결국 백기를 들고 다음달부터 제품 가격을 인하한다. 농심이 대표제품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인하하기로 했고,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다음달 주요 제품 가격을 내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난 18일 라면 가격 인하 언급 이후 9일 만이다.
농심, 신라면 50원·새우깡 100원 인하…삼양식품·오뚜기도 '인하 가닥'
국내 라면업계 1위 농심은 대표제품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다음달부터 인하한다. 삼양식품과 오뚜기 역시 라면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농심은 다음달 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한다고 27일 밝혔다. 소매점에서 현재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 한 봉지의 가격은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심이 신라면 가격을 인하한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새우깡 가격 인하는 이번이 처음이다. 라면기업들은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13년 전 가격을 인하한 전례가 있다.
이는 제분사의 소맥분 가격 인하로 인한 조치다. 정부는 지난 26일 제분업계에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제분(밀가루)·라면업계는 다음달 가격 인하에 나서기로 했다.
농심은 "국내 제분회사로부터 공급받는 소맥분의 가격은 오는 7월부터 5.0% 인하될 예정"이라며 "농심이 얻게 되는 비용절감액은 연간 약 80억원 수준이고, 이번 가격인하로 연간 200억원 이상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심의 이번 결정은 지속적인 원가부담 상황속에서도 소맥분 가격 인하로 얻게 될 농심의 이익증가분 그 이상을 소비자에게 환원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삼양식품과 오뚜기 역시 라면 제품 가격 인하 방침을 내부적으로 정했다. 다만 구체적 인하폭은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7월 중으로 라면 주요제품 가격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인하율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정부 가격 압박 속 떠는 식품사…다음 타자는?
라면기업들의 가격 인하 결정은 추 부총리가 라면을 정조준해 인하를 사실상 권고한 후 9일 만의 일이다.추 부총리는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 가격과 관련해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제 밀(SRW·적색연질밀) 가격은 이달 t당 232달러85센트로 지난해 6월보다 37.3% 떨어졌다.
라면업계가 제분업계의 밀가루 가격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자 정부는 지난 26일 밀가루 가격 인하를 제분업계에 요구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날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한국제분협회 회원사와 간담회를 열고 국제 밀 가격 인하에 따라 국내 밀가루 가격을 조정해줄 것을 업계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제분업계는 다음달 가격 인하에 나서기로 했다.
추 부총리가 구체적 상품 가격에 대해 당부한 것은 올 2월 소주에 이어 라면이 두 번째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격 인하를 주문해 현실화되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MB 정부 시절 라면을 시작으로 식품 기업들이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한 만큼 유사한 흐름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분업계가 가격을 인하한 만큼 다음 타자로 양산빵, 과자 등이 거론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추가적으로 품목이 지목된다고 가정한다면) 과자의 경우 주재료가 감자 등으로 다양하고 관련 국제 원재료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에서 양산빵이 (과자보다는) 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 타자는 가격 인상을 앞둔 유제품 업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우유 원유(原乳) 가격을 정하기 위한 협상이 시작된 상황에서 우유가 들어가는 식품 물가가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제품 업계는 원유 가격이 오르는 수순인 만큼 추가적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 관련 업체 관계자는 "원유 가격 인상분 만큼 가격에 반영돼야 기업 수익성이 지켜진다. 제품 가격 인상이 단행되지 않으려면 (원유 가격 인상을 방지하기 위한) 농가와의 협의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커피원두와 대두유 시세 하락 등을 감안해 커피 전문점, 치킨 프랜차이즈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4월 치킨, 커피, 버거 프랜차이즈 관계자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 동향을 점검한 바 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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