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혈액학회에선 200여 개 참여기업 중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함께 국내 유일한 참여사인 디지털 유전자증폭(PCR) 진단장비업체 옵토레인에 현지 전문가들의 이목이 쏠렸다. 혈액 채취를 통해 1시간여 만에 혈액암(만성골수성백혈병) 발병 여부와 진행 상황, 완치 여부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진단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을 접목해 진단 정확도는 기존 PCR 장비 대비 500배 높아지고 진단 속도는 세 배 이상 빨라졌다. 또 소형냉장고만 했던 진단기기 크기 역시 10분의 1로 줄여 소형 밥솥만 해졌다. 유럽에서 판매 중인 이 회사의 디지털 PCR 기반 혈액암 진단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거쳐 올 4분기께 국내 주요 대형 병원에 공급될 예정이다.
2012년 설립된 옵토레인은 국내 유일한 반도체 기술 기반의 디지털 PCR 진단장비업체다. ‘타깃 유전자’에 형광물질을 입힌 뒤 증폭시킨 유전자를 반도체 광학 센서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기술로 분석해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혈액암 진단기기다. 기존 PCR 장비로는 한계가 있었던 혈액암 진행단계, 완치 여부 등의 파악이 가능하고 치료 후 남아있는 암세포도 추적할 수 있는 제품이다. 진단 시간은 기존 4~6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줄었다. 이도영 옵토레인 대표(사진)는 “반도체 기술 덕분에 진단 정확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며 “기존 경쟁사 제품으로는 정상세포 1000만 개 중 암세포가 500개 이상 있어야 감지할 수 있지만 이 제품은 1000만 개 중 암세포가 단 한 개만 나와도 잡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들이 게임체인저로 부른 건 ‘확장성’과 ‘소형화 가능성’ 때문이다. 카트리지만 바꿔주면 유방암 등 다른 암 진단이 얼마든지 가능한 데다 PCR 장비 기능의 80%를 반도체 칩 속에 넣은 덕분에 휴대용 제품도 나올 수 있다. 이 대표는 “혈액 채취만으로 유방암 종류와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 제품을 내년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를 설립한 이 대표는 원래 SK하이닉스 출신 반도체 전문가였다. 반도체 기술이 활용될 더 큰 시장을 찾다가 진단시장에 진출했다. 창업 초기 3년은 암흑기였다. 이 대표는 “AI 알고리즘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며 “일하는 방식이 다른 정보기술(IT)과 바이오 엔지니어를 중재하고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지난 3월 기술성 평가를 통과한 이 회사는 연내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독보적인 반도체 기술로 경쟁사들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