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는 대로 한국은 재생에너지에 적합한 지형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태양광 투자에 야단법석을 쳤지만, 전체 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5%(2021년)에 불과하다.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요원하고, RE100을 맞추기 위한 송배전망 투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CF 100’이다. 원전, 수소연료까지 포함해 CF(carbon free·탄소 제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원전 비중 30%에 세계적으로도 월등한 원전 기술을 가진 우리에겐 훨씬 합리적이다.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 어떤 에너지원보다 낮고, 발전단가 역시 가장 싸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RE100만을 맹목적으로 부르짖는다. 그의 말에서 우리 에너지 현실과 기업 부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열심히 CF100을 추진한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겠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은 RE100 에너지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자처럼 위협한다. “RE100이 ‘높고 완고한’ 무역장벽이 돼 곧 일자리와 국내 경제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국제 사회 기류를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원전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프랑스는 물론 미국 영국 일본 핀란드 폴란드 체코 등이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의 탄소중립 해법은 2035년까지 원전 150기를 더 짓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에너지 전환’이란 표현을 썼지만, 맥락상 의미는 ‘탈원전’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정책 실패 사례인 문 정부의 탈원전 전개 과정은 중국 마오쩌둥 시절 대약진 운동, 1990년대 북한 고난의 행군 때 대아사(大餓死)와 상당히 비슷한 패턴이 있다.
1950년대 말 마오는 소련의 15년 내 미국 추월론에 자극받아 15년 안에 당시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제시했다. 묘책은 중국의 최대 자산, 농민을 철강 역군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농촌에 조악한 자가 고로인 ‘토법고로(土法高爐)’ 수십만 개를 짓게 하고 농민들을 내몰았다. 밥그릇, 숟가락, 문고리부터 멀쩡한 농기구까지 쇠붙이는 몽땅 걷어가 철광석 대용으로 고로에 쏟아 넣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산출물은 쓸모없는 고철이었다. ‘1t의 목표 미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오의 명령에 숱한 통계 조작과 허위 보고가 있었다. 농촌이 고철 생산터로 몰락한 뒤 기근이 겹쳐 45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김일성은 섬유에 매달렸다. 이른바 ‘주체섬유’라고 불린 비날론이다. 월북 화학자 이승기 박사가 개발하고, 나일론처럼 석유가 아니라 북한에 풍부한 석탄과 석회석이 원료란 점에서 김일성이 시쳇말로 단단히 꽂혔다. 비날론은 가볍고 질기긴 하지만 노끈이나 낚싯줄에나 맞을 뿐 옷감에 적당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기 먹는 하마였다. 1980년대 신공법이 나왔으나, 사업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김일성 지시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증설에 나섰다가 100억달러의 공사비를 날렸다. 지금 북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 후유증이 최대 3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난의 행군이다.
재난 영화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편견과 원자력 비전공자들에게 둘러싸여 진행된 게 탈원전이다. 문 전 대통령의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합니까”라는 댓글은 빨리 폐쇄하라는 지시나 다름없었다. 월성원전은 토법고로, 비날론과 달리 경제성 검토가 있긴 했다. 그러나 허위 현황표, 회계법인 경제성 평가 강제 조작, 감사를 방해하려는 파일 대거 삭제 등 조작과 은폐가 난무했다.
탈원전이 가져온 에너지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문 정부 시절 22조여원, 2030년까지 25조원 등 47조여원의 막대한 비용이 추정된다. 토법고로, 비날론, 탈원전은 모두 지도자들이 종교처럼 집착한 광기의 산물이다. 그들의 또 하나 큰 공통점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상품 경쟁력을 가진 한국 원전 생태계를 궤멸시킨 데 대한 사과는 들어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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