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를 구분 짓는 점, 선, 면처럼 도시 전체를 이 다섯 가지 요소가 대표하리라는 데 큰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전통적인 랜드마크가 형태적으로 거대한 구조물인 경우가 많았던 반면 요즘에는 인상적인 구조물이나 사람의 마음에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면 어느 것이라도 랜드마크 기능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첨단 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는 그랜드캐니언이나 나파밸리와 같은 특화된 지역으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리콘밸리라는 세계 첨단의 산업단지가 랜드마크로 등장하면서 한국에서 산업단지를 개발할 때면 흔히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고 호언한다. 그러나 실상을 알면 얼마나 허황된 비교인지 금방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실리콘밸리는 새너제이를 중심으로 샌타클래라, 쿠퍼티노, 팰로앨토 등의 도시와 지역에 걸쳐 약 4800㎢의 면적을 점유하고 있다. 45만㎡로 개발된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의 1만 배 규모다. 용인에 새롭게 국가단지로 개발할 반도체밸리가 600만㎡ 정도라고 하지만 그래도 800분의 1 수준이다.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기업이 셀 수 없이 많고, 우리가 잘 아는 구글이나 애플 같은 두세 개 기업의 주식 총액은 한국 전체 기업의 주식총액을 합한 2000조~3000조원 규모에 달한다. 규모도 규모지만 기업의 내용을 보면 정보기술(IT)과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포괄하는 점은 비슷해 보이지만 개발하는 기술의 범위가 차이 나며, 기술 격차도 크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에는 스탠퍼드대가 기여한 바가 크다. 16년간 스탠퍼드대 총장을 지낸 공대 교수인 존 헤네시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실리콘밸리가 날개를 단 1990년대에 졸업생들과 대학 주변에서 기술 창업을 했다.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교수의 지도로, 신기술 특허를 가지고 창업에 나섰고 그들이 실리콘밸리를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실리콘밸리의 한가운데 있는 새너제이주립대도 컴퓨터학과의 인력은 언제나 ‘전원 취업’이며 대학원은 만원이고, 경영대학도 기술개발 산물의 경제적 창출을 위해 ‘풀가동’되는 것을 본다. 최고의 산업단지 배후에 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산업단지를 개발하면서도 그 주변 대학을 언급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자원이 산업단지 근처에서 창업하고,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에 동참해주는 소프트파워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라도 주문한 것을 생산해주는 하청업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는 세계 수준에 있으니, 반도체에 특화된 실리콘밸리를 조성한다고 한다면 미국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성전자의 평택, 화성, 기흥공장, 그리고 SK의 이천공장과 그 중간에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새롭게 등장할 용인 반도체밸리, 경기 남부지역을 수평으로 관통하는 이들이 모두 반도체 특화단지로서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이 들어선다면, 그리고 그들이 성공적인 성과를 이뤄간다면 가히 미래의 석유라고 불리는 반도체의 실리콘밸리는 한국에 있다고 이름 붙여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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