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압도적 1위 LVMH에 그나마 ‘견제구’를 날릴 수 있을 만한 기업으로는 2위 케링그룹이 꼽힌다.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의 브랜드를 앞세워 지난해 203억5100만유로(약 29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케링은 패션·잡화에 치중된 포트폴리오, ‘간판’ 구찌의 부진 등으로 한동안 성장성 둔화에 시달려왔다.
그랬던 케링이 ‘뷰티 승부수’를 던졌다. 조(兆) 단위 비용을 투입해 260년 넘는 역사의 프랑스 럭셔리 향수 브랜드 ‘크리드’를 인수하기로 했다.
크리드 브랜드를 가진 하우스오브크리드는 글로벌 럭셔리 향수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독립 기업이다. 1760년 헨리 크리드가 설립한 이후 7대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맞춤형 양복점에서 시작해 1781년부터 향수를 만들어왔다. 영국 국왕 찰스 3세와 조지 3세가 크리드 향수를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크리드는 니치 향수 중에서도 고가로 분류된다. 대표 제품인 ‘어벤투스’(사진·100mL)의 경우 50만원이 넘는다.
패션·잡화 브랜드에 집중해오던 케링그룹이 크리드 인수를 결정한 건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이란 게 명품업계의 분석이다. 케링의 올 1분기 매출은 50억7700만유로(약 7조9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찌의 매출 증가율이 1%에 머문 탓이다. 이는 같은 기간에 LVMH가 전년 동기 대비 17% 불어난 210억유로(약 29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과 비교되는 성적이다.
구찌는 2015년 화려함을 추구하는 맥시멀리스트 성향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임명한 뒤 폭발적 인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최근 패션계의 흐름이 미니멀리스트적 세련·절제미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소비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파리증시에서 2021년 8월 13일 788.9유로로 사상 최고가를 찍은 구찌 주가는 지난 27일 505.7유로로 장을 마쳐 이 기간에 35.8% 하락했다. 구찌의 새로운 CD로 지난 1월 임명된 사바토 드 사르노는 오는 9월 이탈리아 밀라노 가을·겨울 패션쇼에서 데뷔한다.
2월 뷰티 법인 케링 보테를 신설한 것도 이 분야로의 공격적 확장을 염두에 둔 행보다. 케링 보테는 로레알·샤넬·에스티로더 등을 거치며 뷰티 분야에서 25년 넘게 종사한 라파엘라 코르나기아 최고경영자(CEO)가 이끌고 있다.
케링은 크리드의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해 케링 보테를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 회장은 “크리드 인수는 케링 보테의 첫 번째 전략적 행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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