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학자들은 올해 엘니뇨 때문에 인류가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대가를 치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엘니뇨로 주요 경작지에 이상기후가 닥치면 식량 자원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뛸 수 있다. 파나마 운하 등의 물동량이 제한돼 물류 대란이 일어나고, 전력난으로 제조업 기지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모두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 경기침체 우려가 커진 가운데, 엘니뇨까지 겹쳐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8일 외신에 따르면 텍사스,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지역과 베이징 등에선 낮 최고 기온이 40~45도까지 올라가는 이상고온이 지속되고 있다. 멕시코, 에콰도르 등 중남미 지역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산하 기후예측센터(CPC)는 지난달부터 엘니뇨 현상이 시작된 것으로 분석했다. 아직 엘니뇨 초입인데도 식량자원 가격은 벌써 강세다. 엘니뇨로 가뭄이 들어 작황이 부진할 것이란 우려가 반영돼서다.
로부스타 원두(커피콩) 선물(7월물) 가격은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t당 2930달러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설탕 재료인 원당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이날까지 28%, 코코아 선물 가격은 23%가량 뛰었다. 로부스타의 주요 산지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브라질은 엘니뇨가 발생하면 가뭄 확률이 높아지는 지역이다. 세계 코코아의 절반가량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도 가뭄 우려 지역이다. 설탕 원료의 주요 산지 중 하나인 인도는 이달부터 몬순(우기)인데도 강우량이 평년의 70%(25일까지 기준)로 적다.
식품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밀 선물 가격은 이달 들어 17% 올랐다. 밀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5월까지는 하락했으나, 미국 곡창지대의 가뭄이 심해 작황이 부진하자 이달 들어 상승 전환했다. 라면, 과자 등 식품부터 비누 등 생활용품에까지 다양하게 쓰이는 팜유 가격이 하반기에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과거 엘니뇨 동안 평균적으로 비(非)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폭은 3.9%포인트 확대됐다. 주요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엘니뇨에 따른 폭우로 구리 채굴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뿐 아니라 중국을 대체할 후보지로 꼽히는 베트남에 폭염에 따른 전력난이 예고되면서 제조 공장의 무사 가동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다.
전문가들은 엘니뇨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예상 이상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바르가비 사크티벨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가 고(高)물가와 경기 침체 위험에 노출된 ‘문제의 시기’에 하필 엘니뇨까지 등장했다”며 “엘니뇨는 공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지난 5월 ‘사이언스’에 게재한 연구에서 이번 세기(21세기)에 엘니뇨 때문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84조달러(약 11경원), 비율로는 1%가량 손실이 날 것으로 예측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브라질, 호주, 인도 등 엘니뇨 영향권에 드는 나라의 경제 충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엘니뇨 때문에 인도와 아르헨티나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최대 0.5%포인트, 호주 페루 필리핀은 0.3%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엘니뇨
스페인어로 소년을 뜻하는 엘니뇨(El Nino)는 적도 지역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장기 평균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이다.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 동쪽에서 부는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고, 태평양 중부와 동부에 대류가 몰려 온도가 다시 상승한다. 이는 대기 상층의 제트기류 흐름에 영향을 줘 예년과 다른 이상 기후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가뭄 폭염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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