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소송 끝나지 않았다" 현대엘리 분쟁 장기전 돌입한 쉰들러

입력 2023-06-29 14:33   수정 2023-07-05 09:32

이 기사는 06월 29일 14:3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2위 엘리베이터 기업인 쉰들러가 현정은 현대엘리베티어 회장을 상대로 2000억원 규모의 2차 주주대표소송을 추가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 회장이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로부터 자금을 융통해 경영권을 지켰지만 분쟁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쉰들러는 주주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돌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일부 시장에서 매도하고 있다. H&Q코리아 자금모집에 영향을 끼치면서 추후 상대적으로 낮은 주가로 지분을 추가 확보하려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쉰들러가 투자금 회수보다는 영향력을 과시하며 현 회장과 장기전을 준비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쉰들러가 2014년 제기한 1차 대표소송으로 약 2800억원(지연이자 포함)에 달하는 현금을 마련해야했던 현 회장 측 입장에선 2차 추가 배상까지 짊어지게 되면 경영권을 지키기 버거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숨겨졌던 2차 주주대표소송 가시화
29일 IB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는 2020년 1억6000만달러 규모의 추가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현재 1심을 진행하고 있다. 양 측은 오는 8월 추가 변론기일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나섰다. 해당 소송은 현 회장이 회사에 지연이자 포함 약 2800억원을 지급하라고 올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2014년 주주대표소송과 별개의 건이다. 김앤장법률사무소가 해당 소송 관련 쉰들러를 대리하고 있다.

쉰들러는 주주대표소송 소장에서 당시 경영진 및 이사회가 현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 등을 지원하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에 총 20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경영진과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에 끼칠 손실 위험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다는 게 쉰들러 측의 입장이다.

쉰들러는 우선 2017년 현대엘리베이터의 알짜사업부인 물류자동화 사업을 현 회장의 개인회사인 현대무벡스로 양도하는 과정을 문제삼았다. 특정한 이유 없이 현대엘리베이터가 현 회장이 최대주주였던 현대유엔아이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80억원을 투자했고, 이 자금을 토대로 현대유엔아이가 100% 자회사로 설립한 현대무벡스에 물류자동화사업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주장이다. 쉰들러 측은 이 과정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입은 손실규모가 1175억원에 달한다고 소장에 적시했다.

쉰들러 측은 2015년엔 현대엘리베이터가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매수청구권을 별도로 현 회장과 가족회사에 부여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오너일가가 온전히 누리게 한 점도 문제 삼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5년 2050억원 규모 CB를 이음PE 등 3명에게 배정하는 방식으로 발행했다. 1년 뒤 콜옵션을 행사해 이 중 820억원어치의 CB를 재매수한 뒤 매수청구권을 현 회장과 현 회장의 가족회사인 현대글로벌에 부여했다. 쉰들러는 이 과정에서 현 회장 측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고스란히 누리게 되면서 회사에 약 2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쉰들러 측은 순자산이 -300억원이던 엘케이프론티어(현 현대종합연수원)를 현대엘리베이터가 2012년 약 490억원에 인수한 과정도 문제삼았다. 엘케이프론티어는 현대아산이 뛰어든 블랙스위트콘도(양평) 사업 시행을 위해 설립된 회사로 당시 현대상선도 지급보증에 참여했다. 콘도 분양이 실패하며 사업이 흔들려 지급보증을 선 현대상선이 손실에 처할 위기에 놓이자 현대엘리베이터가 세차례에 걸쳐 액면가의 50배에서 200배에 달하는 고가로 지분을 떠안았다. 결국 현 회장의 순환출자구조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게 쉰들러 측 주장이다. 엘케이프론티어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2010년 현대상선 보통주를 기초로 대신증권과 불리한 주식스왑계약을 맺어 약 280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도 소장에 포함됐다. 해당 파생상품과 관련한 손실은 2014년 주주대표소송에서 일부 인용됐다. 다만 대신증권을 대상으로 한 소송 제기가 절차상 이유로 각하되자 쉰들러 측이 다시 청구에 나섰다.
분쟁 장기전을 대비한 전략적 '엑시트' 해석
2차 주주대표소송을 둔 1심 판결일이 잡히지 않아 소송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해당 소송까지 인용될 경우 현 회장 측은 경영권 방어에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쉰들러 측은 주주대표소송 외에도 “현대엘리베이터가 과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유상증자와 CB 발행을 추진할 때 한국 금융당국이 이를 방치해 손실을 봤다”며 1억9000만달러(약 2450억원)의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청구한 상태다.

쉰들러는 여러 주주대표소송으로 현 회장을 압박하는 한편으로 장내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팔고 있어 그 의도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9만119주(0.54%)를 장내에서 매도했다고 지난 27일 공시했다. 쉰들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16.49%에서 15.95%까지 줄었다. 해당 소식에 다음날 주가는 장중 12.8% 급락하기도 했다. 이달 4일엔 5만5544주를 추가로 매각해 지분율을 15.81%까지 줄였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10% 이상을 지속 유지할 것"이라는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지분율(15.81%)을 고려할 때 약 5.81%를 시장에 더 매각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IB업계에서도 쉰들러가 차익을 실현한다기보단 현 회장 측과 한 차례 더 분쟁을 유도하기 위한 일보 후퇴라는 관측이 많다. 주가 하락을 유도해 투자금 모집에 돌입한 H&Q코리아의 출자자(LP)들의 불안감을 자극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쉰들러가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와 손잡고 적대적 M&A에 돌입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하지만 쉰들러 측은 이 같은 적대적 M&A 가능성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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