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상징하는 결말을 지닌 곡들은 연주가 끝난 뒤에도 지휘자나 연주자들이 한참 침묵을 이어간다. 이런 침묵을 함께하는 체험은 예술을 넘어 종교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감동을 산산조각 내는 것이 때 이른 박수다. 뜻있는 청중은 이런 경우를 ‘안다 박수’라 부르며 비난한다. ‘나 이거 어디서 끝나는지 알아!’라며 자랑 좀 하지 말자.
클래식 애호가 이현식의 ‘클래식 환자의 병상일기’ 일본 목판화에 열광한 '나비파'
나비파의 회화에는 평면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그들은 캔버스는 평면임을 인정하고 색은 색대로 그 위에 순수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허구이며, 관람자들에게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목판화(우키요에)는 그들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었다.
갤러리에서 일하는 한찬희의 ‘너무 몰랐던 요즘 미술’ 뮤지컬 공연에서 환호가 사라졌다
대학로의 중소규모 뮤지컬 공연장에 박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공연 중에 그렇다는 얘기다. 관객 대부분이 숨죽인 채 공연을 보고, 쌓아둔 감정은 커튼콜에서야 기립박수로 쏟아낸다. 뮤지컬에서 박수와 환호가 반드시 필요한가를 두고 논란은 있다. 하지만 난 ‘필요하다’고 본다. 뮤지컬의 본질은 무대, 관객, 배우의 상호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쇼노트 부사장의 ‘씨어터 인사이트’ 해파리가 세상을 망하게 한다니
해파리가 세상을 망하게 하는 소설을 읽었다. 해파리라니. 처음에 든 생각은 해파리로 세상이 망할 수 있다면 지나가는 길고양이로도, 무심코 쓰레기에 앉은 파리로도 세상은 무너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럼에도 임선우의 단편 <빛이 나지 않아요>에서는 변종 해파리로 세상이 망해가는 중이었다. 밤이면 해파리들이 해안가로 몰려온다.
악스트 편집장 백다흠의 ‘탐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