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 경제팀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를 압박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뒤이어 농림축산식품부가 나서 밀가루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국제 밀 가격(2023년 6월 기준)이 1년 전보다 50% 떨어졌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앞서 “세금 좀 올렸다고 주류 가격 올리냐”며 주류업계를 압박한 지 넉 달 만이다. 라면값에는 밀가루뿐 아니라 급등한 인건비·물류비·에너지 비용 등 여러 가지가 반영되는데, 정부가 시장의 개별 상품 가격에 간섭·개입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이 뒤따랐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시장’과 ‘자유’를 외쳐왔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상당히 큰 것은 사실이다. 총선(2024년 4월)이 다가오면서 정부가 다급해진 것일까. 경제부총리의 라면값 인하 압박, 어떻게 볼 것인가.
라면이든 무엇이든 경제부총리가 급등 요인을 살피고 대응책을 내놓는 게 당연하다. 특히 라면은 서민 청년 노인층 등에는 주식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적 생활 품목이다. 이런 상품의 가격 변동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근래 라면값이 급등한 과정과 해당 업계의 늘어난 이익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2년 9월께 국내 라면업계는 원자재 가격과 임금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9.7~11.3% 올렸다. 대표업체인 N사는 2021년에도 6% 가까이 인상했는데 1년 만에 또 11%나 올렸다. 서민 식품인 라면 5개 포장 상품이 4000원에 달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라면 수요는 늘어나는데, 라면 먹기도 부담이다. 반면 라면업계 이익은 많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원자재인 밀가루 가격이 1년 새 50%가량 떨어졌으니 제품값에 반영하라는 촉구는 문제 될 일이 아니다.
장바구니 체감물가로 보면 서민은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통계로는 소비자물가가 3~4%대 오르지만, 식품류는 그보다 훨씬 높다. 유통망 점검, 사재기 단속 등과 함께 수급 시스템을 잘 봐야겠지만 그것만으로 정부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다수 국민이 정부에 ‘물가 관리를 하라’고 하지 않나. 그런 여론을 봐도 정부는 가격 급등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까지 나서 유가 개입을 했지만 결과는 석 달간 L당 100원 내리는 정도에 그쳤다. 당시에도 “국제유가는 내렸는데 국내 기름값은 왜 그만큼 내리지 않느냐”며 정유회사와 주유소 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라던 정부 평판만 나빠졌다. 비싼 유가는 기름값의 50%를 넘는 세금이 더 문제였다. 라면업계는 국제 밀값이 떨어져도 국내 밀가루값에 바로 반영되지 않고, 6개월가량 시차도 있다고 하소연한다. 밀 가격이 내려도 이전보다는 여전히 높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전체 임금이 함께 상승하는 등 다른 인상 요인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시장’을 강조해왔다. 가격은 시장 자율에 맡기고, 담합행위나 사재기 같은 시장교란 행위를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의 고유권한인 세금 정책도 좋다. 라면업계만 때리면 다른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일일이 개입한다면 공산국가처럼 국가주도의 계획경제 아닌가. 정부가 주력할 것은 공공의 군살빼기, 저금리로 인한 거품빼기, 생산성 혁신 여건 조성, 노조의 막무가내 임금투쟁 저지 등 경제살리기가 본령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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