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관세청·통계청이 지난 3년 동안 퇴직자가 재직하고 있는 민간 법인에 일감 1555억원어치를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수의계약을 맺은 일부 법인은 대표를 비롯한 다수의 임원이 전직 공무원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계약사무규칙에 따라 퇴직자가 소속된 법인과의 수의계약이 금지된다. 반면 조달청을 비롯한 중앙 부처에는 이같은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을 개정해 퇴직공무원이 재직하는 법인과의 수의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달청은 원장부터 본부장까지 대부분의 임원이 조달청 출신 퇴직공무원으로 채워진 재단법인 한국조달연구원과 68억원어치 수의계약을 맺었다. 통계청은 한국통계정보원과 391억원어치를, 한국통계진흥원과는 154억원어치를 수의계약 처리했다. 관세청은 국가관세종합정보망운영연합회(수의계약 규모 538억원)과 주식회사 케이씨넷(401억원)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법인은 각 기관 출신 퇴직공무원들이 임원이나 대표로 재직하고 있을 뿐, 국가가 자본금 출연을 전혀 하지 않은 100% 민간 법인이다.
조달청은 수의계약이 국가계약법이 허용하는 예외에 속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조달청은 홍영표 의원실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조달연구원과 수행한 계약은 경쟁입찰로 공고했지만 2개 이상의 입찰업체가 나오지 않아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것"이라며 "공공조달 연구분야의 시장이 협소하고 전문성을 가진 기관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이같은 수의계약이 관례적으로 이뤄진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앙부처 연구용역 입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퇴직자들이 재직하는 기관과의 입찰에서 수주에 성공했지만, 실제 프로젝트에 임하는 과정에서 부처의 노골적인 불만 제기에 직면했다"며 "이후 '일감 몰아주기'라는 생각이 드는 프로젝트에는 입찰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30일 중앙부처와 퇴직공무원 소속 단체의 수의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민주당 소속 김민철 김영진 신동근 신현영 양기대 이원욱 장철민 정일영 조정식 홍기원 등 12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2년 이내 퇴직공무원이 대표 혹은 임원으로 재직하는 법인과의 수의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법안은 경쟁이 성립되지 않거나 특별한 기술이 필요할 경우 관보에 수의계약 사실을 공고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안보 등의 국가적 이익을 해칠 경우에는 공고 대신 감사원 통지로 대체되는 조항도 포함됐다.
홍 의원은 “정부 부처의 퇴직공무원이 공기업 퇴직임직원보다 허술한 전관예우 규제를 받는 것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며 "국가계약법을 조속히 개정해 공기업보다 못한 정부 부처의 수의계약 처리 규정을 공정화하고 구조적인 전관예우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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