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스터링을 서두에 꺼낸 이유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발언과 맥이 닿아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7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등을 만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국 과학 기술 역량을 모아 창의적인 시너지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등 첨단 과학 기술이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다. 현장에서 윤 대통령은 석학들에게 한국의 과학 수준을 높일 방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53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존 마르티니스 UC샌타바버라 물리학과 교수는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물리학자와 수학자,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 등으로 팀을 꾸릴 것을 조언했다. 과학자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라는 조언인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봤을 때 정부가 올해 처음 개최하는 ‘제1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자 대회’는 크게 주목할 만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오는 4일부터 나흘간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서 여는 대규모 학술대회다.
세계 각국에서 온 1000명의 한국인 과학자가 한자리에 모인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120명을 포함해 유럽(70명), 캐나다(40명), 중국(25명), 호주·뉴질랜드(25명), 일본(15명) 등이다. 이들은 정부가 최근 선정한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해외 연구 동향을 종합한다. ‘2030년 우주 미래 기술 전략 보고서’에 담길 내용을 토론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윤 대통령이 직접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지시해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9월 미국 대통령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다. 한국계 기업인 네트워크를 벤치마킹해 과학자의 힘도 모아야 한다는 취지다.
과학계에서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나는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한국인 과학자끼리 토론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과학의 위상 강화다. 한국 과학계는 조직력이 약했다. 학문적 성취에 비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중국, 일본 과학계가 자국 국적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적극 활동하는 것과 비교된다. 한 원로 과학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2010년을 사례로 들었다. 그래핀의 물리·전기적 특성을 가장 먼저 밝혀낸 인물인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정작 수상자 명단에서 누락됐다.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가 노벨상위원회 실수로 김 교수가 수상자 명단에서 빠졌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앞으로 한국 과학계가 뭉쳐 국제학술대회 등에서 활동하면 연구 성과를 더욱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외국인 과학자도 넓은 의미의 한국 과학자로 포함하는 노력이다. 서울대 등에서 지금까지 박사 학위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유학생은 80여 개국 100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더욱 많아진다. 지금까지는 박사 학위 수여식 이후 접점이 끊겼다.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자국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면 세계 과학계에 ‘한국학파’가 만들어질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이들 박사급 인재가 한국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도 인구 5000만 명 붕괴를 앞둔 상황에서 중요하게 검토할 만한 정책 방향이다.
다시 누리호로 돌아가 본다. 클러스터링과 항상 함께 언급되는 로켓 기술은 ‘짐벌링(gimballing)’이다. 엔진이 내는 추력의 방향을 미세하게 바꿔 로켓 진행 각도를 바꾸는 기술이다. 누리호 1단에 묶인 4개 엔진에는 2개씩 총 8개의 짐벌 액추에이터가 달려 있다. 짐벌 액추에이터는 엔진 추력을 로켓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상하·좌우 최대 6도씩 움직인다. 지표면에서 수직(발사각 90도)으로 올라간 로켓이 위성 투입 궤도에 맞춰 수평(0도)이 되도록 방향을 튼다. ‘한국의 엔진’인 1000명의 과학자가 지혜를 모아 ‘한국호(號)’ 비행 궤도를 멋지게 잡아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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