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팔릴 뻔한 이 기업…세계 10위 파운드리 회사로 '우뚝'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3-07-01 18:46   수정 2023-07-01 21:41


한국 2위, 세계 10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DB하이텍의 충북 상우공장 로비엔 큰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비메모리 사업에 헌신하여 조국 선진화에 기여한다.'

파운드리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2006년 7월 3일, 김준기 DB그룹(옛 동부그룹) 창업회장이 직접 쓴 것이다. 김 창업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을 일으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는 사업보국의 의지를 담아 글을 쓰고 액자를 완성했다. DB하이텍 상우공장 직원들은 출퇴근 때마다 이 액자를 보며 반도체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2001년 한국에서 파운드리사업 시작
DB하이텍은 2001년 설립됐다. 현재까지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다른 기업에 팔리거나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도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건 반도체, 특히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제품·서비스)사업의 중요성을 꿰뚫고 DB하이텍을 포기하지 않은 DB그룹 총수의 의지 영향이 컸다.

DB그룹은 1983년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몬산토와 합작해 웨이퍼 생산을 시작했다. 김 창업회장은 당시 "미래 첨단산업인 정보기술(IT)산업을 발전시켜 일본,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미래 산업의 쌀로서 전자 산업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1992년엔 반도체 소재인 ‘고순도다결정 실리콘’을 세계 두번째로 개발했다.

DB그룹은 1997년 동부전자(DB하이텍의 전신)을 설립했다. 반도체 생산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처음엔 메모리반도체에 주목했다. 미국 IBM과 협력해 256메가 D램 사업을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공장건설이 중단됐다.

반도체사업에 대해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결론은 시스템반도체, 그중에도 파운드리였다. DB그룹은 2001년 충북 음성에 상우공장을 준공했다. 2002년엔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현재의 부천공장이 이때 DB그룹의 품에 들어왔다.
"파운드리는 국가 미래 위해 꼭 필요한 사업"
사업 초기 어려움이 컸다. 시스템반도체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했던 대만,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과 달리 정부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힘으로 파운드리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초기 어려움을 겪었다.

DB그룹은 대규모 파운드리 설비투자를 위해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기관들로부터 1조2000억원 규모 대출을 일으켰다. 막대한 이자 부담은 DB그룹을 흔들었다. 파운드리 기술력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사태가 발생했다. 세계 반도체산업 30년 역사상 최악의 불황까지 불어 닥치면서, DB의 반도체사업은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누적 적자가 3조원에 부채 규모가 2조3000억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회사 안팎에서 "반도체사업을 포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 창업회장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는 "반도체사업은 시간과 자금이 매우 중요한 사업이며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때 상우공장 로비에 걸려 있는 김 창업회장의 친필 액자가 탄생했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김 창업회장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기업을 하다 망해서는 절대로 안 되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망해도 좋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떠한 위험이 따르더라도 비메모리에도 전념할 것이고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누군가가 이어받아 성공시킬 수 있다면 파이오니어로서의 내 역할에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9년 김 창업회장은 차입금 상환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재 3500억원을 출연했다. 심각한 유동성 부족 상황을 겪었던 DB하이텍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3년만에 흑자전환했지만 당국이 중국기업에 매각 추진
김 창업회장은 장기 적자 상황에서도 DB하이텍이 선진 파운드리 기술을 개발하고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전 세계 고객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8년 업계 최초로 0.18마이크론급 복합전압소자(BCDMOS) 공정개발에 성공한다.

2010년엔 아날로그반도체 특화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2012년엔 매출을 2억달러까지 늘렸다. 그리고 2014년, DB하이텍은 파운드리 사업 진출 13년 만에 영업이익을 냈다. 2015년엔 순이익을 기록했다. DB그룹 관계자는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핵심 기술인력들을 대거 영입해 대만 TSMC와도 견줄 수 있는 복합전압소자(BCDMOS) 공정기술을 개발한 게 결국 전환점이 됐다"며 "김준기 창업회장의 과감한 결단과 강력한 사업 의지가 파운드리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도 위기가 있었다. 2012~2013년 웅진, STX, LIG, 동양 등의 그룹이 무너지자 금융당국과 KDB산업은행은 '사전적 구조조정' 제도를 도입했다. '대기업 부실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좋은 의도였지만 DB그룹엔 기업을 존폐의 기로로 몰아넣는 대형 악재가 됐다.

금융당국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건설 당진발전소를 하나로 묶어 포스코에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는 패키지딜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지나가자 DB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DB의 제조·서비스분야 계열사가 무너지기 일보직전 상황으로 갔다.

2013년 11월 당시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의지 표명 차원에서 동부(DB)가 반도체사업을 포기해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DB하이텍(당시 동부하이텍) 매각을 종용했다. 산업은행은 DB그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2년간 공개매각을 추진했다. 결과는 실패했다. 당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외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순수 파운드리'에는 관심이 크지 않았다. 일본 업체들은 반도체 생산설비를 점차 줄이는 팹 라이트(Fab light)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상황이 여의찮아 보이자 산업은행은 파운드리를 중국 파운드리업체 SMIC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SMIC는 현재 세계 5위에 올라 있는 중국의 대표 파운드리 기업이다.

SMIC는 컨소시엄을 통해 DB하이텍 인수를 추진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다. 2015년 3월 인수추진 철회 계획을 산업은행에 통보했다. DB그룹 관계자는 "국가 전략산업의 중요성을 간과한 무리한 조치였다"며 "중국 기업에 팔리지 않은 건 천운"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2년 넘게 매각작업이 답보상태에 빠지자 산업은행은 매각을 철회했다.
영업이익률 파운드리 세계 2위인데 경영권 공격 받아
지난 1분기 DB하이텍은 매출 2982억원, 영업이익 89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8%로 세계 10대 파운드리 업체 중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2022년엔 매출 1조6753억원, 영업이익 7693억원을 기록하며 4년 연속 최대 실적 기록을 이어갔다. DB하이텍 주가는 2018년 말 1만850원에서 6월 30일 기준 6만3100원으로 681.5% 급등했다.

DB하이텍은 자사의 성장뿐만이 아니라 고객사인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설계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해 팹리스들에 무상으로 지원한 게 대표적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MPW 프로그램(하나의 웨이퍼에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운영했다. 중소형 팹리스들이 초기 개발과정에서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최근 DB하이텍이 다시 사업 외적인 위기를 맞았다. DB하이텍 지분 7.05%를 확보한 행동주의펀드 KCGI가 지난 6월 9일 "DB하이텍의 회계장부와 이사회 의사록을 열람·등사하도록 허락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인천지법 부천지원에 냈다.

행동주의펀드는 기업의 지분 매집한 뒤 주요 주주로서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한다. 기업가치 상승을 유도한다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기업의 경영권을 흔든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KCGI는 김준기 창업회장의 퇴임, 독립적 이사회 구성,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경영투명성 제고,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요구하고 있다.

DB그룹에선 '창업회장의 퇴임'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는 입장이 강하다. DB그룹 관계자는 “김 창업회장은 한국에서 파운드리사업을 이끈 장본인"이라며 "김 창업회장의 대규모 투자 결단과 사재 출연 등을 통해 DB하이텍이 2014년 흑자전환하고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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