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수산물 차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에 전국 횟집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아우성이다. 그럴듯한 선동에 휩쓸리는 저신뢰 사회의 단면이다. 경제학에선 신뢰를 사회적 자본의 하나로 본다. 인적 자본, 물적 자본처럼 신뢰가 경제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신뢰 부족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여러 매장을 돌며 발품을 팔고, 10원이라도 싸게 파는 곳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판매자를 신뢰하지 못해서 나오는 행동이다. 판매자보다 상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는 정보 비대칭을 극복하기 위해 ‘탐색 비용’을 치른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기업들은 ‘리뷰 할인’을 한다. 제품 구매 후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는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구매자의 리뷰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을 줄여준다. 소비자는 다른 구매자의 리뷰를 통해 탐색 비용을 아끼고, 판매자는 소비자 신뢰를 높여 구매를 유도하는 효과를 얻는다.
신뢰가 있다면 주인·대리인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사장이 직원들을 믿는다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지 감시할 필요가 없다. 그럴 시간에 회사의 전략을 세우고 신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는 “모든 상거래에는 신뢰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며 “경제적 후진성의 대부분은 상호 신뢰의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33%) 독일(33%) 영국(43%) 스웨덴(47%) 등 선진국은 대체로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브라질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10%대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행복도와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신뢰가 약한 사회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 잊을 만하면 등장해 온 나라를 흔들어 놓는 괴담과 선동은 저신뢰 사회의 원인이자 결과다. 거짓말을 하니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거짓말이 판친다. 그 결과는 크나큰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08년 9월 발표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 보고서에서 광우병 사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3조7513억원으로 추산했다.
신뢰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사회의 신뢰 수준이 하루아침에 높아질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은 있다. △공정한 법 적용 △재산권 보호 △경제활동의 자유 보장 △부정부패 척결 등이다. 이런 원칙들이 지켜질 때 거짓과 선동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한국은 고신뢰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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