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 정교(政敎)분리, 종교 중립성 등으로 번역되는 라이시테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국교였던 가톨릭의 특권과 정치적 영향력 배제를 위해 등장했다. 이민자가 많이 유입된 20세기 들어서는 여러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공공 영역에서 개별 종교의 표현을 자제하는 근거가 됐다. 라이시테 원칙은 1905년 법으로 제정됐고 이후 프랑스 헌법에도 반영됐다. 공공장소에서 대형 십자가나 유대교의 ‘다윗의 별’을 전시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사회 통합의 원리로 내세운 라이시테가 무슬림에게는 차별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것. 라이시테를 적용한 학교 내 히잡 금지법(2004년), 공공장소 부르카 금지법(2010년), 해변과 공공 수영장에서의 무슬림 수영복 부르키니(부르카+비키니) 착용 금지(2016년) 등이 이어지면서 무슬림의 반발도 커져 왔다.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이 얼마 전 여자 축구선수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축구협회(FFF)의 방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마찬가지.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경찰 총격에 사망한 이후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한 폭력 시위의 배경에도 ‘라이시테의 역설’이 있다. 프랑스 인구의 13.0%인 855만 명이 이민자로, 이 중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추정된다. 절반가량이 아프리카 출신, 30%가량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출신이다. 종교·인종 차별로 누적된 이들의 불만이 빈곤·저학력·실업 등의 고질적 문제와 겹쳐 대규모 시위로 폭발했다는 얘기다. 라이시테의 기계적 적용보다 ‘톨레랑스’(관용) 정신이 더 필요해 보인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