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평균 국민 수는 17만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12만 명) 평균보다 많은 편이다. 일본 27만 명, 미국 76만 명보다는 적지만, 독일과 프랑스 각각 11만 명, 영국 10만 명보다는 많다. 그러나 숫자로만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의원내각제가 뿌리 박힌 나라들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볼 일도 아니다. 큰 문제는 우리 국회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집단이라는 점이다. 한국 국회의 경쟁력은 OECD 국가 가운데 26위로 최하위에 속한다(서울대 조사). 지난 20대 국회는 ‘신뢰하는 국가사회기관’ 조사에서 1.8%로 꼴찌를 기록했다. 마구잡이 입법을 하다 보니 발의된 법안 가결률이 11%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수와 특권을 보면 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생산성은 낮은 데 비해 한국 국회의 특권은 OECD 최상위다. 의원 연봉만 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국민 1인당 국민소득(GNI) 대비 한국(세전 1억5426만원)은 3.36배로 일본(2.31배) 미국(2.28배) 영국(2.03배)의 약 1.5배에 이른다. 보좌진 수는 9명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OECD 주요 국가(2~5명)의 2~4배에 달한다. 일본은 3명에 불과하다. 북유럽 나라들은 의원 2~4명이 비서 1명을 공유한다. 그러니 연봉 이외 경비도 이들 나라보다 더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의원이 보좌진을 개인 용무, 집안 행사 등에 사적으로 활용하다가 문제가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의 의원 사무실 넓이는 150㎡(약 45평)로 주요 국가에 비해 4~5배 넓다. 영국은 중진의원이 아니면 서너 명이 한 사무실에 칸막이를 쳐놓고 사용한다. 이탈리아는 2020년 헌법을 개정해 상·하원 의원 수를 300명 넘게 줄였고, 독일은 올 3월 하원의원 수를 106명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프랑스도 30% 감축을 추진하는 등 글로벌 추세도 주목할 만하다. 점점 줄어드는 유권자 수도 고려해야 한다. 의원 수를 줄이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 국회는 국회 개혁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든가 해야 하는데 요지부동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여론을 감안해 의원 수 동결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과 야당들은 오히려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의원을 늘리는 대신 세비(보수)를 줄여 재정 지출 총액은 변함없도록 하자고 한다. 그러나 보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규제·포퓰리즘 입법 폭주로 인한 폐해가 큰 것을 감안하면 의원을 줄여도 시원찮을 판이다. 정치 과잉은 또 어떤가. 국회가 헌법에 정해진 정부 예산 편성권까지 갖겠다고 달려드는 마당이다. 보수를 동결한다고 해도 보좌진 수 감축 등 특권을 줄이지 않으면 연간 700억원가량 더 들어간다. 의원 수가 증가하면 국고가 부담하는 선거비용, 정당보조금 등도 덩달아 늘어난다. 게다가 선거 때마다 세비 30% 감축 공약을 제시해놓고 지키기는커녕 더 올려받는 것을 보면 ‘보수 총량 동결’ 약속도 믿을 수 없다.
의원 증원과 감축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게 비례대표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내에 진출시켜 입법 활동을 뒷받침한다는 취지의 비례대표제는 한참 뒤틀려 있다. 선정 과정부터 계파 보스의 자기 사람 심기 경쟁이 벌어지고, 시민단체와 운동권 인사들의 자리 챙기기 용도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의원이 된 뒤엔 출신 직능단체 이익만 대변하는 데 힘을 쏟고, 차기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기 쉬운 곳을 골라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는 게 비례대표의 현주소다. 21대 총선 땐 위성정당을 급조해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단 다음 거대 정당으로 옮겨간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현 상태로라면 비례대표는 줄이는 게 낫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보면 ‘의원 감축’ 주장은 한 번 툭 던져놓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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