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잘 지내?”
지난 1일 제주 서귀포시 야크마을. 검은색 티셔츠에 남색 면바지 차림의 베르나르 베르베르(62)가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베르베르가 “여러분과 왜 글을 쓰고,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얘기 나누고 싶습니다. 가까이 오세요”라고 말하자, 다들 의자를 들고 작가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이날 행사는 베르베르의 대표작 <개미>의 한국어판 출간 30주년 및 신간 <꿀벌의 예언> 출간을 기념해 연 북토크. 11세 초등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 4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이들은 2박3일 동안 베르베르 작품으로 토론회를 하고, 작가와 함께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고국이 아닌 다른 나라 팬들과 ‘독서여행’을 떠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 하지만 베르베르에게 한국은 낯선 이국이 아니다. 그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린 나라이자 그를 사랑하는 팬이 가장 많은 국가여서다. <개미> <타나토노트> <심판> 등 세계적으로 팔린 그의 책 3000만 부 중 약 1300만 부가 한국에서 판매됐다. 베르베르가 지난 30년 동안 한국을 아홉 번이나 찾은 이유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베르베르는 이번 방한 일정 동안 서울과 강원 원주, 제주와 부산을 들렀다.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 사랑’은 신간 <꿀벌의 예언>의 주제인 ‘환생’으로 옮아간 뒤에도 계속됐다. “다시 태어난다면, 역시 (다른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 남성이면 어떨까요. 물론 계속 글을 쓰는 소설가로요.”
베르베르는 <꿀벌의 예언>의 모티브를 ‘퇴행 최면’이란 명상 기법에서 얻었다고 설명했다. 최면을 통해 자신의 과거 111개 전생을 상상하면서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찾았다는 얘기다. 이처럼 과학과 비과학을 넘나드는 스토리는 베르베르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이번 책에서도 전생과 최면이란 소재를 꿀벌에 대한 섬세한 관찰로 엮어냈다. “저는 과학과 비과학이 분리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창의적인 생각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하죠. 두 다리를 모두 써야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것처럼요.”
베르베르는 이후 송악산 둘레길로 자리를 옮겨 ‘플로깅’(조깅+쓰레기 줍기) 행사를 벌였다. 그는 “제주도 거리가 이렇게 깨끗한지 몰랐다.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비단벌레를 줍더니 “도와줄게(I want to help you)”라며 숲 쪽으로 옮겨주기도 했다. 부산에서 온 정민수 씨(31)는 “이렇게 곤충에 관심이 많고, 세심하게 지켜보니 소설 <개미>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이날 행사에는 어린 독자도 여럿 함께했다. 열한 살 딸과 함께 온 이재은 씨(40)는 “아이가 추천해줘서 베르베르를 처음 접했다.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는 게 그의 매력”이라고 했다. 소설가를 꿈꾼다는 박모군(14)은 “엉뚱한 일도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작가의 용기에 감탄했다”며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제주=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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