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잇따라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공장 건설에 나섰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전구체에 이어 이들의 원료인 니켈 리튬 등의 가공 공장까지 투자가 몰리고 있다. 중국산 배제를 노린 미국의 인플레이션 방지법(IRA) 등으로 한국에 공장을 짓는 게 유리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지역자치단체마다 공장을 유치하려는 노력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국내외 기업은 지역별로 클러스터화를 구축하며 시장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들어 LG화학 포스코퓨처엠 SK온 에코프로 엘앤에프 LS 등이 국내에 배터리 소재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대부분 양극재와 전구체 공장으로,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50%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며 전구체는 양극재 제조의 전 단계 핵심 소재다.
이들 회사는 국내에 추가 투자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양극재 시장 규모는 2021년 173억달러(약 22조2000억원)에서 2030년 783억달러(약 100조4000억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양극재 ‘빅4’인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LG화학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세 배, 영입이익은 네 배 가까이 급증했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연간 매출이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에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 공장 투자가 잇따르는 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미국의 IRA,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 영향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중국을 제외하는 탈중국화 분위기가 퍼지자 소재 회사들이 한국에 공장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양극재와 전구체는 완성된 배터리와 달리 부피와 무게에서 수출 등 이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올 들어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겠다고 나선 회사 중엔 화유코발트와 GME 등 중국 회사도 많았다. 김규현 새만금개발청장은 “중국 배터리 소재 회사들의 새만금 투자 문의가 작년부터 급증했다”며 “중국 외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최근 전북 익산의 양극재 공장 매각을 결정했다. 연산 4000t 규모의 이 공장이 규모의 경제에 미달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신 LG화학은 충북 청주 인근에 새 양극재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주에 연산 7만t, 경북 구미에 연산 6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보유한 LG화학은 두 곳으로 소재 공장을 집적화한다는 전략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전남 광양과 경북 포항에 공장을 집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산 9만t의 광양의 양극재 공장을 2025년까지 연산 15만t으로 확장하고, 현재 연산 5000t 규모의 전구체 공장도 5만t으로 증설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아예 양극재 원료인 니켈과 리튬 가공공장을 광양에 짓기로 했다. 포항에도 2025년까지 연산 10만6000t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한다. 또 포스코홀딩스는 영일만4산업단지에 중국 CNGR과 함께 1조5000억원을 투자해 니켈 정제 및 전구체 공장을 짓는 내용의 합작투자계약(JVA)을 지난달 21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청주와 포항에 공장을 둔 에코프로는 청주에 연구개발(R&D) 캠퍼스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수천억원을 들여 약 14만㎡ 부지에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 관련 연구원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엘앤에프는 대구와 칠곡 등 대구권에 자리 잡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새만금은 배터리 소재 클러스터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리튬 등 가공공장이 먼저 들어서자 올 들어 LG화학, LS, 엘앤에프, 에코프로, SK온 등이 합작회사 형태로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이들 회사의 전구체 투자 규모만 연산 28만t 규모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새만금은 항구를 통해 원료 공급이 원활하고 간척지 부지가 넓어 향후 공장 증설이 쉽다”며 “여기서 만들어 청주, 서산, 울산 등 국내 배터리 공장에 트럭으로 운송이 가능해 많이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래 산업으로 떠오른 배터리 소재사의 공장이 반도체와 달리 비(非)수도권에 흩어져 분포하면서 지역 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 거점으로 배터리 소재 클러스터가 형성되면 외국 회사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국내뿐 아니라 북미 지역에도 생산 공장을 총집결시키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수급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배터리 소재 업체들에게 생산 공장의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함께 미국 내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생산 공장들이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으로 투자 매력도가 높은 북미에도 몰리고 있다.
IRA로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비롯한 첨단소재를 생산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전기차에 IRA가 규정한 조건을 충족한 배터리를 탑재하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을 내걸자 배터리·전기차 업체들은 미국 현지에 생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독 공장뿐만 아니라 배터리 소재·셀 제조업체, 완성차업체와의 합작공장 설립도 나서고 있다.
북미 진출에 적극적인 것은 배터리 소재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IRA에 따르면 양극재, 음극재, 양극박, 음극박 등 주요 핵심 소재도 미국 내에서 생산할 경우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된다. 미국에 가장 먼저 진출 계획을 밝힌 배터리 소재사는 LG화학이다. LG화학은 2027년까지 30억달러(약 3조8415억원)을 투자해 테네시주에 연산 12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 인근에 총 172만㎡규모의 부지를 확보했다. 해당 공장은 올해 하반기 착공을 시작해 2025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양산에 들어간다.
포스코퓨처엠은 미국 진출을 위해 GM과 합작회사 ‘얼티엄캠’을 설립했다. 얼티엄캠은 지난해 7월 총 6억3300만달러(8116억원)를 투자해 캐나다 퀘벡주에 연산 3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짓는 중이다. 캐나다 내 첫 양극재 공장인 만큼 캐나다 연방 정부와 캐나다 연방 정부와 퀘벡 주 정부로부터도 대규모 인센티브도 약속받았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지난해 7월부터 퀘벡주에 연산 1만8000t 규모 전지박 공장을 건설 중이다. 전지박은 배터리의 음극재 부분을 코딩하는 얇은 구리막이다. 배터리 내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롯데케미칼도 롯데알미늄과 합작회사 ‘롯데알미늄머티리얼즈USA’를 설립하고 미국에 양극박 공장을 건설항 예정이다. 롯데알미늄머티리얼즈USA는 3300억원을 투자해 켄터키주에 연산 3만6000t 규모 양극박을 2025년부터 생산할 계획이다. 양극박은 알루미늄을 2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얇게 가공해 만든 전기차 배터리 부품으로 전기차 배터리 내에서 전자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이다.
이외에도 에코프로비엠과 코스모신소재는 오는 2025년 북미 지역에 양극재 공장을 완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부지 결정을 위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검토 중이다.
엘앤에프도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레드우드머티리얼즈’와 함께 미국 내 전구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글로벌 1위 동박제조업체 SK넥실릭스 역시 미국 내 동박생산거점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엘앤에프와 SK넥실리스 모두 북미 진출을 결정했고 정확한 시기나 지역은 올해 안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강미선 기자 mis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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