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파워 온> 출간 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진 J. 류 박사
“미국 학부모의 90%가 고등학교 때 자녀가 컴퓨터과학을 접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53%의 고등학교만 컴퓨터과학 수업을 제공하고, 실제로 수업을 듣는 학생은 전체의 4.7%밖에 되질 않습니다. 이런 불균형은 좋은 직업을 가질 기회를 배제하고, 컴퓨터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컴퓨터과학 형평성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진 J. 류(한국명 류진선) 박사는 4일 순화동의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파워 온> 출간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같은 대학의 동료와 함께 지난해 미국에서 먼저 이 책을 펴냈다. 최근 한길사를 통해 번역 출간됐다.
책은 만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래픽 노블이다. 한국계 어머니와 엘살바도르 불법 이민자 아버지를 가진 크리스틴, 성소수자인 존, 히스패닉계 이혼 가정에서 사는 안토니오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의 테일러 등 4명의 청소년이 주인공이다. 고등학생인 이들은 왜 컴퓨터과학을 배워야 하는지 깨닫고, 모두를 위한 컴퓨터과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류 박사는 “백인이나 부유층만이 컴퓨터과학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흑인, 라틴계, 저소득 아시아 이민자 등은 여전히 컴퓨터과학을 배울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테크 기업들의 인종 및 성별 분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백인 남성이다. 이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알고리즘의 편향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얼굴 인식 AI가 백인 남성을 잘못 알아볼 확률은 1%에 불과하지만, 유색 인종 여성은 그 확률이 35%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오프라 윈프리, 미셸 오바마, 세레나 윌리엄스 같은 유명인의 얼굴도 못 알아본다면, 이는 누구를 위한 기술일까요?”
류 박사는 이 책은 “픽션(소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소설처럼 가상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모두 실제 사례를 토대로 했다는 것이다. ‘너는 여학생이니 컴퓨터과학 대신 다른 수업을 듣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선생님, 얼굴을 잘못 알아본 인공지능 시스템 탓에 경찰에 총을 맞은 흑인 등이 그런 사례다.
그는 “차별과 편견 위에 세워진 기술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불평등과 불공정을 이어지게 한다”며 “첨단 컴퓨터과학 기술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부작용을 가지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에 이용당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컴퓨터과학의 미래를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류 박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시각 및 환경 연구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와이주립대 마노아 캠퍼스에서 교육 및 교수학 석사 학위를, UCLA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1년 미국 교육학회의 ‘잰 호킨스 젊은 연구자상’을 받았다. 어머니 모니카 류도 유명하다. 종양방사선 전문의이면서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국 학교에 한국어 과정을 개설하는 일을 하는 민간 단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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