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에 ‘현대’를 붙인 건 단순히 이 시대에 만든 음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규칙적이고 파편화된 소리, 난해한 조성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와 똑 닮아서 붙인 측면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래서 현대음악은 인기가 없다. 일반 대중은 물론 클래식 애호가와 연주자조차 외면한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야 할 자리를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 채우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어디를 가나 이런 ‘비인기 종목’을 살리는 데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인 최수열(44·사진)도 그런 사람이다.
최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최 감독은 “이해하기 어렵고 불친절한 현대음악에 일반 관객이 등을 돌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평소 들어보지 못한 현대음악의 생경한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팬이 되지만, (대중을 현대음악에) 한 번 빠뜨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쉽게 받아들일까를 매일 궁리한다”고 했다.
이런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 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다. 통상의 클래식 공연보다 1~2시간 늦은 오후 9시에 시작한다. 대신 공연 시간을 50분으로 줄였다. 임팩트 있게 관객을 빨아들이기 위해서다.
“밤 7시30분 공연은 일반 직장인에겐 빠듯할 수밖에 없습니다. 9시는 여유가 있잖아요. ‘어려운 과목’(현대음악)을 공부하는 야간 심화과정 느낌도 나고…. 공연 시간을 인터미션 없이 50분으로 짠 이유요? 중간에 쉬면 관객들이 도망갈지도 모르잖아요(웃음). ”
최 감독은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현대음악을 알리는 데 힘 쏟는 이유를 ‘음악가로서의 사명’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시대의 음악이 후대에도 남으려면, 지금 자주 연주돼야 합니다. 말러 교향곡도 130년 전에는 세상에 갓 나온 현대음악일 뿐이었죠. 그 시대에 자주 연주된 덕분에 지금도 사랑받는 겁니다.”
그 역시 처음부터 현대음악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무대에 서는 게 귀했던 학창 시절, 작곡과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들고 포디움에 선 게 현대음악과 사랑에 빠진 계기가 됐다.
“음악을 억지로 좋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현대음악을 자주 소개해서 관객들이 알게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거죠. 제 전략은 ‘끼워팔기’입니다. 인기 있는 클래식 레퍼토리에 현대음악을 하나씩 슬쩍 넣는 거죠(웃음). 덜 난해한 곡으로요.”
꽤 효과가 있었다. 작년 1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 부산시향 60주년 기념 공연이 그랬다. 진은숙,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현대음악 작곡가의 곡으로 프로그램으로 짰는데도 좌석이 거의 다 찼다. 이번 공연도 그동안 보기 힘든 신선한 콘셉트 덕분에 예상보다 티켓이 잘 팔리고 있다고 예술의전당은 설명했다.
최 감독은 대중음악도 사랑한다고 했다.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김동률 노래로 가득 찼고, 그의 자동차 라디오 채널은 CBS 음악FM의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맞춰져 있다. 가요를 사랑하던 소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음반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악기를 배우기엔 늦었다고 판단,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에 입학한 뒤 마에스트로의 길을 걸었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하나만 파고든 대다수 음악인과 달리 여러 음악을 섭렵한 덕분에 그는 클래식과 현대음악, 국악관현악을 넘나든다. 지난달 30일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로봇 지휘자 ‘에버6’와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음악으로 과거(클래식)와 현대, 미래를 오간 셈이다.
“생각보다 동작은 잘 구현하더군요. 하지만 로봇은 귀가 없고, 호흡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리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못하고, (호흡이 없으니) 같은 박자여도 훨씬 급하게 느껴지죠.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무대였습니다.”
음악 저변을 넓히려는 최 감독의 시도는 올해도 이어진다. 지난해 롯데콘서트홀 송년음악회에서 왁킹 댄서 립제이, 탭댄서 오민수, DJ 하임을 조합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인 그의 머릿속엔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현대음악 프로젝트가 들어 있다.
6일 공연에는 현대음악의 대표 작곡가 리게티,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해 현재 유럽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곡가 신동훈의 작품을 선보인다. “음악 애호가 중에는 프로그램을 예습한 다음 공연장에 오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번 공연엔 그러지 마세요. 빈손으로 와서 그냥 느끼면 됩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자극을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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