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금고는 단기간에 전국으로 확산했다. 1972년 전국 마을금고는 2만1794개, 회원은 95만 명에 육박했다. 비결은 저축과 대출의 선순환. 회원들은 저축을 통해 근검·절약 기풍을 조성했고, 금고에 모인 돈은 대출을 통해 생활 안정과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어서 당시 농촌의 고질적인 고리채를 끊어내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다. 금고에 남은 돈으로는 국공사채 등을 매입해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초기에 신용조합, 재건금고, 마을금고 등으로 혼용되던 명칭이 새마을금고로 통일된 건 1983년 새마을금고법이 시행되면서다.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새마을금고가 뱅크런을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작년 말 3.59%였던 연체율이 지난달 사상 최고 수준인 6%대로 치솟아서다. 지난달 29일 기준 대출금액 196조8000억원 중 연체액이 12조1600억원(6.18%). 연체율 10%를 넘는 금고도 30개나 된다고 한다.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수신 잔액은 259조6000억원으로 4개월 새 5조5000억원 줄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공적자금 투입 없이 자체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새마을금고가 왜 이렇게 됐을까. 공격적인 부동산 대출 확대 후 시장 침체,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행정안전부의 느슨한 감독,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 여러 부실 요인이 거론된다. 예금자 보호 5000만원, 중앙회의 상환준비금 13조원, 현금성 자산이 60조원에 달해 뱅크런은 기우라는 게 중앙회와 행안부의 설명인데, 고객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게 급선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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