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때 세계 최대 자본시장이었던 홍콩이 점차 쇠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시작했지만, 인재와 투자금 유치 등 주요 지표가 예상보다 저조해서다. 경쟁국인 싱가포르에 뒤처지며 아시아 최대 금융허브 지위를 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홍콩의 주요 지표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오프닝과 함께 투자 확대·관광객 유치 등을 위한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당국의 통제에 따른 여파로 풀이된다.
홍콩을 떠나는 인재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인구는 3년째 감소세를 보였다. 홍콩에서 다른 나라(중국 제외)로 이주한 주민 숫자가 2021년 9만 8100명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1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홍콩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은 크게 줄었다. 홍콩은 지난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2600개의 금융 취업 비자를 발급했는데 이는 2019년의 절반 수준이다
올 들어 비자 정책을 대폭 완화하며 반등 조짐이 나타났다. 올해 1~5월 홍콩 금융 취업 비자 승인 건수는 3700여건을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이다. 숙련공을 유치하기 위한 비자인 '탑 탤런트 패스'도 지난 5월 기준 4만 9000여건이 승인됐다.
홍콩 컨설팅업체 컴플라이언스 플러스의 조세핀 청 이사는 "인재 유치 지원책이 금융권 종사자 수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며 "하지만 은행 위기로 신뢰도가 바닥난 상태라 예상만큼 지표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홍콩 자본시장은 지난해부터 내리막을 걷고 있다. 기업공개(IPO) 자금이 대폭 줄었다. 지난해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이뤄진 IPO 공모액은 전년 대비 70% 감소했다. 세계적인 통화 긴축으로 인해 자금 유동성이 줄어든 탓이다. 올해도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기업은 22억 4000만달러를 끌어모았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 감소한 수치다. 지난 2003년 사스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홍콩 자본시장이 위축된 배경엔 중국이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보기술(IT) 업체와 산업 전반을 통제하려 들자 투자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해외 기업이 앞다퉈 홍콩 증시에 상장했던 과거와 달리 2020~2021년 공모액의 90% 이상은 중국 본토 기업이었다.
자본시장이 침체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위축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홍콩에 둔 아시아 본부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해서다. 캐나다 투자은행 코일러스에 따르면 홍콩 중심부 오피스 단지 공실률은 지난 4월 15%를 기록했다. 2019년 4월보다 3배 높았다.
주택 시장도 덩달아 침체하고 있다. 주택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유명하지만, 회복세가 더디다는 평가다. 올해 상반기 홍콩 주택 가격은 평균 6.3% 상승했다. 지난해 16%가량 폭락한 데에 따른 기저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광객 유치에도 실패했다. 올 상반기 홍콩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300만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는 매년 약 6000만명이 홍콩을 찾았다. 국경을 개방했지만, 과거 평균값의 절반을 못 미치는 셈이다.
각종 지표가 부진하기 전부터 전조증상이 나타났다. 세계 각국 도시 금융 경쟁력을 측정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싱가포르는 지난해 9월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1위, 세계 3위에 올랐다. 직전 3월 조사에서 세계 3위를 차지했던 홍콩은 이번 조사에서 세계 4위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아시아 최대 금융시장이라는 자부심이 무너진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홍콩 당국은 투자자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더 확대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시장인 아트바젤, 럭비 세븐 등 대형 이벤트를 개최하고 자산운용포럼 등을 확장할 방침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