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와인 마시러 시장에 간다

입력 2023-07-06 18:43   수정 2023-07-07 02:38

힘든 날에는 시장에 간다. 사람이 모이고, 물건이 오가고, 시간이 쌓여가는 곳. 낮과 밤도 잊은 그곳엔 삶의 에너지가 샘솟고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킨다. 하루를 역동적으로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몸짓이 모여 시장이라는 장소는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

골목길과 동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시장이라는 곳. 거기엔 살 사람과 팔 사람이 만나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춘향과 심청의 이야기는 장터를 떠돌다 소설이 됐고, 김동리 ‘역마’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각각 화개장터와 봉평장을 배경으로 한다. 어떤 동네의 시장에 들러 ‘그 옛날 이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만 해도 삶의 큰 여백이 만들어진다.

갈 곳과 놀 곳이 많아진 요즘, 전통시장의 매력과 기능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침체를 겪던 전국 곳곳의 전통시장을 다시 살린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젊은 상인들은 시장 곳곳에 개성 넘치는 ‘반전의 가게’들을 들여놨다. 그랑크뤼 등급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시장의 루프톱, MZ세대가 열광하는 커피 브랜드의 새로운 매장도 있다. 온라인 배송, 여행 캐리어 보관 서비스 등 편의성을 높인 시스템들도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 아주 오래된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사람들은 다시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육회와 빈대떡으로 유명하던 광장시장에는 근사한 와인바와 베이커리가, 한약재 냄새가 짙게 배어나는 경동시장에는 글로벌 커피 브랜드가 문전성시다. 망원시장→망리단길→망원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시장 데이트 코스는 커플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해졌다. 미식 가이드 미쉐린이 주목하는 맛집들도 시장 안에 숨어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여행의 낭만을 즐기러 반드시 시장을 찾는다.

시장엔 화려한 첨단기술과 최신식 시스템이 없어도 괜찮다. 잘 정돈된 편의점과 마트엔 없는, 일상의 소중함과 긴 시간이 집약된 곳이라서다.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는 번잡함은 때때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바코드와 셀프 계산대는 없지만 서툴게 써 내려간 가격표와 메뉴판은 오히려 정겹다. 요란한 노란 불빛이 반짝이는 야시장은 어떤 야경보다도 화려하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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