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름 모를 질병, 끝나지 않는 고통

입력 2023-07-07 17:45   수정 2023-08-06 00:01


“기다리는 자에겐 반드시 때가 온다!”

19세기 수필가 앨리스 제임스는 어느 날 기쁨에 차 자신의 일기장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제임스는 평생 뚜렷한 병명도 모른 채 병을 앓았다. 그를 잠시나마 환호하게 한 건 병의 호전이 아니었다. 유방암 진단이었다. 암을 선고받은 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건강이 나빠진 이후 누가 봐도 확실한 질병에 걸리기를 소망했다”고 썼다. 1년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은 제대로 된 이름이 없어 원인과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은 병, 그리고 그 병을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임스처럼 말이다. ‘만성질환 혹은 이해받지 못하는 병과 함께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이 책을 훌륭하게 요약한다.

저자의 경험담에서 출발한 책은 사회과학서와 에세이를 오간다. 저자 메건 오로크는 시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다. 미국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뉴요커’ ‘파리리뷰’ 등을 거쳐 ‘예일리뷰’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오로크는 20대 초반부터 정체불명의 증상에 시달렸다. 그는 팔다리를 칼로 찔러대는 듯한 충격에 깜짝 놀라며 아침에 눈을 뜬다. 두드러기, 식은땀, 피로감, 복통 등도 겪는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봄’ 같은 쉬운 단어도 떠올리기 힘들어한다.

그는 왜 아픈지 명쾌하게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했다. 자가면역질환은 몸에 침입한 세균과 바이러스를 퇴치해야 할 면역세포가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의료계 전문가들과 만날 때마다 진단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처방도 달라졌다. 저자는 자신의 병명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책에 녹여냈다. 회고록 같기도 하고, 르포르타주 같기도 하다.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제 인류는 거의 모든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냈거나 알아내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사람은 분명히 아픈데도 병원에서 명쾌한 진단을 받지 못한다.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거나 눈에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몸의 증상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병의 실체를 의심받는다는 점에서 고통은 더 심하다. 잘 알지 못하는 병은 심리적 문제로 해석되거나(네가 예민해서 그래) 등한시되기 쉽다(멀쩡해 보이는데).

수시로 병원에 오갈 비용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더욱 비관적이다. 계급, 인종, 언어 모두 필요한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질병은 사회적 문제로 전이된다. 의사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은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떠도는 비과학적인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과 불화하기도 한다.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병을 없애거나 무찌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 말끔히 해결하는 ‘사이다’ 같은 결말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애초에 그런 해법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서 책이 출발했으니까.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길보라는 책 추천사에서 “저자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편한 극복 서사 쓰기를 거부한다”며 “대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충실하게 기록한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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