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출신 공작원이 영국 비밀정보국(MI6)에 보낸 기밀문서에 등장하는 문구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 100년 전인 1922년에 보고된 첩보다. 반복되는 역사는 늘 배울 점을 제시하기 마련. 최근 출간된 <스파이들>은 이처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첩보 활동의 역사를 살피고, 오늘날 정보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시사점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응용역사학을 연구하는 칼더 월턴이다. “소련은 개별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큰 틀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지난 100년간의 정보전쟁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다. 소련 정보원들은 서구권 요원에 비해 방대한 첩보 활동을 벌였지만 정확한 정보가 지도부 귀에 도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체제 인사를 숙청하는 독재 국가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다. 저자는 “소련 내부인민위원부(NKVD·국가보안위원회의 전신) 요원들은 스탈린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를 보고하면 자신들이 고문과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는 위험에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지금 러시아 수장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어떨까. 저자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푸틴이 “첩보 활동, 은밀한 불법 활동, 암살, 선전 선동 등 KGB 교본에 나온 기술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다만 푸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 러시아 정보기관은 “대규모 국가 조직 범죄의 매개체”로 거듭났다고 한다. 저자는 “푸틴이 물러나더라도 그의 후임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의 논의는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첩보 기관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체제에 봉사하고 침투에 강점을 보인다. 특히 사이버전(戰)에 특화했다. 저자는 “미국의 허술한 개인정보 정책 덕에 중국은 수많은 유명 인사의 약점을 잡아 협박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다”며 “이를 통해 미국 내부에서 스파이를 대거 양산할 수 있다. KGB가 꿈꾸던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셈”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정보전쟁의 핵심은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권이 승리를 거뒀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 “국가 지도부는 자신과 상대의 정보 활동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만용이나 어설픈 직감은 금물이다.”
정리=안시욱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제레미 블랙의 서평(2023년 6월 24일) ‘Spies Review: War in Shadows’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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