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글 줄임말이나 유행 신조어의 과도한 사용을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더 한국어 발음과 문법 상식이 뛰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편이다. 예컨대 ‘몇 월 몇 일’이 아니라 ‘몇 월 며칠’로 표기해야 하고, ‘한국’을 단음이 아니라 길게 장음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식 말이다. 파란색 하나를 표현해도 ‘푸르딩딩’ ‘퍼런’ ‘파아란’과 같은 언어 변형의 깊이가 다양한 한글은 참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과도한 한글 변형을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유행한 신조어도 세월이 흐르면 구세대 용어가 된다. 새로운 문화 현상이 생기면 그에 걸맞은 신박한 유행어가 등장한다. 그래서 신종 언어의 탄생 역사는 각 세대의 문화적 배경을 엿보는 일과 결이 비슷하다. ‘뻐까충’은 한때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충전식 버스 카드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유행했지만, 몇 년 새 모바일 간편결제 같은 핀테크가 발달하며 저절로 다른 신조어에 유행어 자리를 내준 것이다.
요즘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바로 체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플렉스(flex)’하는 1020세대가 늘어났고 대학교 수업에 많은 학생이 애플 맥북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하거나 경제적 사정이 풍요로워진 일부 현상도 있겠으나,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하는 모바일 속 세상에서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달라진 소비문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너무 일찍 치열한 경쟁과 비교 사회에 접어든 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젊은 꼰대’ ‘조용한 퇴사’와 같은 유행어가 결코 가벼운 유머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만의 공감하는 언어가 있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언어를 수용해 그 세대를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신조어가 탄생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 나와 다른 주변의 다양한 세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들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용기를 키워갈수록 서로를 적대하는 경계선도 차츰 허물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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