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리지 않는 직업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치매의 심각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8선의 정일형 전 의원의 부인이자, 정대철 헌정회장의 어머니 이태영 박사였다. 서울대 법대 1호 여학생,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그의 마지막 3년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희호 여사가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이 그였으나, “댁은 뉘시오?”라는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이 치매 담화를 발표한 용기 있는 인물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것도 잊고, 부인 낸시 여사도 몰라보고 세상을 떠났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계속 찾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영화 ‘쇼생크 탈출’의 감방 속 영화 포스터 주인공 여배우 리타 헤이워스도, ‘한국의 오드리 헵번’ 윤정희도 치매로 세상을 떴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치매의 주원인인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최초의 치료제 ‘레켐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았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베타 아밀로이드 독성 단백질을 제거해 기억력과 인지능력 저하 속도를 27%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연간 치료비가 2만6500달러(약 3500만원)나 든다는 것이 문제인데, 치매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 물질은 141개, 임상 진행 건수는 187건이라고 한다. 이 중 곧 FDA 허가가 예상되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도나네맙’은 레켐비보다 효능이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00세 시대의 가장 무서운 장수병인 치매와의 전쟁이 치열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켜줄 힘도 결국 기술에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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