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삶은 넉넉지 못했다. 유족도 어렵게 살았다. 얄궂게도 작품값은 밀레가 세상을 떠난 뒤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1860년 1000프랑에 팔린 대표작 ‘만종’은 1890년 80만프랑에 새 주인을 찾으며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유족은 이와 관련해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여전히 가난했다. “명작을 남긴 건 화가인데 엉뚱한 사람들이 돈을 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렇게 시작된 논의는 1920년 프랑스의 ‘추급권’(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으로 이어졌다. 추급권은 미술가가 판 작품이 경매 등을 통해 다른 이에게 재판매될 때 이익의 일부를 작가나 저작권을 가진 유족이 배분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를 본 영국과 독일 등 다른 유럽 선진국도 프랑스의 뒤를 따르면서 추급권은 서구 미술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한국도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4년 후 추급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미술진흥법’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추급권 도입으로 작품값의 몇%를 더 내야 하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요율 등은 조만간 미술진흥법 시행령을 통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0.25~4%)과 비슷한 수준인 1~5% 범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작품값이 1억원이라면 100만~500만원을 더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작품 총거래액과 비교하면 큰 부담이 되는 돈은 아니라는 게 문화체육관광부 입장이다.
추급권이 생기면 이우환 박서보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경우 수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예컨대 이우환 화백은 한 달에 각종 경매에서 낙찰되는 작품의 평균 총액이 10억원을 넘는데, 추급권이 1%만 적용돼도 이로 인한 매달 수익만 단순 계산으로 1000만원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
다만 1000억원짜리 작품을 팔면 10억~50억원을 받는 등 수익이 무한정 늘어나는 건 아니다. 문체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기 위해 고가 작품은 추급권 적용 요율을 깎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U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50만유로 이상 작품은 0.25%의 요율만 적용하며 최대 보상액을 1만2500유로로 못 박아놨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7억원짜리 작품은 추급권으로 받는 금액이 170만원가량 된다.
법에서는 추급권 유효기간을 작가 사후 30년까지로 정했다. 저작권 유효기간인 ‘사후 70년’에 비하면 다소 짧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유영국(2002년 타계)의 유족은 추급권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김환기(1974년 타계)의 유족은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
제도 도입으로 미술품 가격은 소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경매사와 갤러리들이 추급권 도입으로 인한 미술시장 위축을 걱정하는 이유다. 재판매보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작품값을 깎아달라고 하거나, 일종의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음성적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홍필 문체부 시각디자인과장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까지 유예기간을 길게 뒀다”며 “미술계 및 시장 참여자들과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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