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9일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만나 “IAEA가 일본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의 통행증을 지급했다”고 맹비난을 쏟아냈다. 그로시 총장은 한국 정치권의 불만을 이해하고 있다며 “IAEA는 일본의 처리수 방류가 이뤄질 경우 수십년간 현장에 상주하며 관리·감독을 이어가겠다”고 설득했다.
야당 의원들은 인사말부터 비판을 쏟아냈다. 일본의 처리수 방류에 반대하며 14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IAEA는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맞춤형 검증을 했다”며 “주변국 영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 유감스러운 조사”라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이어 그로시 총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리수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수영할 수도 있다”고 말한 점을 지적하며 “그 정도로 안전하다고 확신하면 일본이 그 물을 음용수로 사용하도록 요구할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위성곤 의원도 인사말 이후 이어진 비공개 면담에서 그로시 총장에게 “IAEA가 국제기구의 본연인 중립성을 망각하고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며 “정치가 아닌 과학을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장 밖에는 50여 명의 민주당 지지자가 ‘IAEA 보고서 100만유로에 팔았냐’ ‘그로시 입국 결사반대’ 등이 적혀 있는 현수막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들은 면담 내내 회의장 내부를 향해 ‘그로시 고 홈’ 구호를 외치고, 회의장 창문을 두드리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이들의 소리가 면담장 내부까지 들려오자 그로시 총장은 “한국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며 “민주적인 사회에서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반대 의견”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시 총장은 면담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시위대를 피해 현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그는 2박3일의 방한 기간에 유국히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박진 외교부 장관과도 면담했지만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3박4일 동안 세 차례 이상 기자회견을 한 것과 달리 언론과의 접촉도 개별 매체와의 인터뷰에 그쳤다.
한 외교 소식통은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김근태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국제기구의 사무총장에게 ‘고 홈’을 외치는 시위대가 손상한 국격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범진/맹진규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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