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영아'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한기(寒氣)가 있다. 사실 합계출산율 0.78명이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니 하는 통계는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친모가 신생아를 죽여 냉동실에 넣었다거나 뒷산에 묻었다는 건 소름 돋치도록 생생하게 다가온다. 우리 옆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인간이길 포기한, 동물에게도 있는 모성을 내다버린 '금수만도 못한 생명체'가 지근거리에서 숨쉬고 살았다는 얘기다.
몇 년치 수치는 더 많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밝힌 '출생신고가 안된 영아' 즉 '유령 영아'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2236명에 달한다. 태어는 났지만 기록상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재 살아있는지 확인도 안된 아이들의 숫자다. 물론 이 중 일부는 지인을 통해 입양됐을 수도 있지만, 정식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은 절차는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거니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베이비박스에 버린 건 그나마 양반. 친모가 영아의 숨통을 끊어 유기를 한 것은 진짜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심지어 영아를 장기 매매의 수단으로 '거래'했을 가능성을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하니, 영화보다 더하다.
물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까지 한 친모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키울 수 없는 경제적 사정'이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든다. 그 어느 것도 '살인'의 명분이 될 순 없다. 그 옛날 기아에 허덕이던 자식들이 부모를 내다버렸던 '고려장'을 우리가 신랄하게 비판해온 것도 인륜에 어긋나서였다. 사랑은 내리사랑만한 게 없다고, 부모의 자식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한 말도 이젠 까마득한 옛말이 됐다.
'처벌'보단 '예방'이 우선이라고들 하지만 살인 처벌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직계존속이나 친권자가 폭력을 이용해 15세 미만 아동을 의도와 상관없이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30년의 징역을, 의도적 살인일 경우엔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우리나라는 영아살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영아유기죄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 발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 것이 인지상정인데, 제 몸으로 낳은 핏덩이를 어떻게 내다버릴 수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죽일 수까지 있는 것인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길고양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달라고,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대한민국에서, 지금 '유령 영아'들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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