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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포함한 바그너그룹 지휘관들과 지난달 29일 접촉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바그너그룹은 이 회동이 이뤄지기 불과 5일 전 쿠데타를 일으킨 뒤 단숨에 모스크바까지 진격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을 휘청이게 한 러시아 용병단체다. 해당 반란 사태의 의미를 축소하고 국제사회에 푸틴 정권의 건재함을 재확인시키려는 취지라는 분석이다.
1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의 전화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프리고진을 포함한 바그너그룹 지휘관 35명을 크렘린궁으로 초대해 만났다고 밝혔다.
3시간가량 지속된 이 회동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에서 바그너그룹이 수행한 특별군사작전(SMO)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고 페스코프 대변인이 전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같은 달 24일에 일어난 일(반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면서 “고용 및 전투 상황과 관련해 추가 옵션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또 “바그너그룹 사령관들이 반란 당시 일어난 일을 요약해 보고했다”며 “그들은 자신들이 국가원수이자 군통수권자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이자 군인이며, 모국을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부연했다.
크렘린궁의 발표는 쿠데타를 기점으로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16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지 단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이날 러시아 국영 TV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과 항공우주군에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저장고와 발사 기지를 파악하고 선제공격을 계획하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송출했다. 이 영상에는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세르게이 수로비킨 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의 직무대행인 빅토르 아프잘로프가 게라시모프에 보고하는 모습도 포함됐다. 수로비킨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게라시모프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쿠데타 이전부터 프리고진의 공격 대상이 됐던 인물이다. 프리고진은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물어 쇼이구와 게라시모프가 경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이들 러시아군 수뇌부가 현재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푸틴의 군사 기반을 무너트리려 했던 프리고진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러시아 국영 통신사인 RIA를 인용, “바그너그룹이 반란 첫날 장악했던 로스토프주에서 전원 철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정부가 “프리고진에 대해 제기한 형사 소송을 취하하고, 바그너그룹 대원들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다만 일각에선 푸틴이 프리고진과 직접 대면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철권 통치에 금이 간 것이란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영국의 러시아 전문 조사기관인 마야크인텔리전스의 마크 갈레오티 수석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푸틴이 프리고진과 협상에 임해 자세를 낮췄다는 건 그가 나약해졌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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