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가상자산을 투자목적으로 보유한 기업은 종류와 취득 경로, 값어치 등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1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 회계 지침과 공시 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기존엔 각 기업이나 회계 감사인마다 제각각으로 판단한 가상자산 관련 회계처리 방법을 제시했다.
송병관 금융위 기업회계팀장은 “그간엔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가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아 명확한 회계처리 지침이 확립되지 않았다”며 “지난달 30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가상자산 관련 규율 체계가 마련되는 만큼 시장의 불확실성을 풀어야 할 때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당국은 가상자산을 투자목적으로 보유한 상장사는 관련 정보를 상세히 주석공시를 통해 밝히게 할 방침이다. 가지고 있는 가상자산의 명칭과 수량을 비롯해 장부상 가치와 시장가치를 각각 알리도록 한다. 가상자산에 대해 적용한 회계정책, 취득 경로, 취득 원가도 기재해야 한다.
가상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에 대한 정보도 공시해야 한다. 보고 기간 보유한 가상자산의 최고가, 최저가, 평균가 등을 적는 식이다. 투자자를 비롯한 회계정보 이용자가 가상자산 가격 변동성 등에 따라 기업이 받게 될 영향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다.
기존엔 가상자산 보유 기업이 판매 목적 여부에 따라 가상자산을 무형자산 혹은 재고자산으로 분류한다는 것 정도만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IFRS(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의 판단에 따른 내용이다.
이에 대부분 상장사는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계상하고, 보유한 가상자산의 장부상 가치만 재무제표에 기재해왔다. 세부 지침이 없다보니 각 사마다 ‘암호화폐’, ‘가상자산’, ‘디지털자산’ 등 계정명도 들쭉날쭉했다.
금융감독당국은 기업과 감사인이 가상자산의 공정가치를 평가할 근거도 마련했다. 기존엔 회사나 감사인마다 가치 측정 기준·절차가 제각각이라 공정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해 활성시장, 공정가치 등 개념에 대한 구체적 조건을 사례와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이날 금융감독당국이 제도권 편입을 추진하고 있는 토큰증권(ST)에 대해서도 회계지침 원칙을 밝혔다. 금융상품 기준서에 따라 금융상품의 정의를 충족하는 경우엔 금융자산으로 볼 예정이다.
송 팀장은 “앞으로 개정될 자본시장법에 따라 발행되는 ST는 금융상품으로 본다”며 “기존 유틸리티토큰, 지불형토큰 등에 대해선 IFRS 해석위원회의 기존 입장에 따라 무형자산 혹은 재고자산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제3자가 발행한 가상자산을 보유 중인 상장사는 37곳이다. 이들이 재무제표에 인식한 가상자산 총 가치는 1392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를 시장가치로 환산하면 약 2010억원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윤지혜 금감원 국제회계기준팀장은 “국내 상장사들은 사업을 위해 특정 가상자산의 거버넌스(협의체) 구성원으로 가입하는 등 과정에서 가상자산을 취득해 보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상장사가 비트코인 등을 투자 목적으로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앞으로 약 2개월간 상장사, 가상자산 사업자, 회계법인 등 이해관계자별로 각각 설명회를 한 차례 이상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이후 감독지침과 기준개정을 확정해 오는 10~11월 중 회계제도심의위원회, 증선위 심의·의결 등을 거쳐 공표·시행할 계획이다.
주석공시 의무화는 내년 1월1일 이후 최초로 개시되는 사업연도부터 적용한다. 금융감독당국은 이에 대해 조기 적용을 적극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송 팀장은 “가상자산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이 마련됐다고 해서 가상자산 자체가 지닌 변동성이나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상자산 투자는 투자자 본인의 책임하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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