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해부터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했음에도 여전히 경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높은 자연금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Fed가 기준 금리를 올려도 시장에서 통용되는 자연금리보다 낮아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자연금리가 예상보다 높아 Fed가 금리 인상 시기를 더 길게 끌고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경제학자 사이에서 금융 여건이 긴축적인지 느슨한지 파악하기 위해 Fed의 목표 기준금리보다 가상의 자연금리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자연금리는 인위적인 정책과 관계없이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형성되는 금리를 뜻한다. 자연금리는 인구 성장이나 기술 발달 등으로 경제가 활발해지면 오른다. 이를 숫자로 집계하기는 어렵다. 자연금리 개념을 창시한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에 따르면 자연금리가 은행이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의 대부금리보다 높으면 투자 수요는 증가한다. 돈을 빌리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금리가 Fed 기준금리보다 더 높으면 긴축 정책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자연금리가 언급되는 것은 최근 Fed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기가 여전히 활황이기 때문이다. Fed는 지난해 1월 0~0.25%였던 기준금리를 지난 5월 5~5.25%까지 단숨에 올렸다. 1980년대 초 이후 가장 빠른 금리인상 속도다.
이러한 조치에도 이른바 '끈적한 인플레이션'은 지속되고 있다. 노이버거버만의 비투자등급 신용 부문 글로벌책임자인 조 린치는 "지금까지 시장은 긴축 정책으로 인해 큰 마찰을 겪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올해 기업들이 자본을 조달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2%로 집계됐다고 지난달 발표했는데, 이는 전달 발표된 잠정치보다 0.7%포인트 오른 수치다.
미국 경제학자 스콧 섬너 전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Fed의 통화 부양책으로 자연금리가 급격히 상승해 지난 18개월 동안 이뤄진 5%포인트 금리 인상 효과가 상쇄됐다"고 주장했다.
섬너 교수는 지금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때와 정반대라고 진단했다. 당시 자연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2007년 금리를 동결했던 Fed의 결정이 실제로는 상당히 긴축적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학계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같은 주장은 Fed가 큰 폭의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Fed 위원들은 올해 금리가 약 5.6%에서 정점을 찍은 뒤 내년에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기준금리가 이보다 더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가벨리 펀드의 주디스 라네리 머니마켓 펀드매니저는 "인플레이션을 이기려면 금리가 더 올라야 할 것"이라며 "수요 둔화를 봤지만, Fed도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금리 인상의 시차효과 때문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