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유럽 뚫은 韓기업인의 '무모한 도전'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3-07-12 10:14   수정 2023-07-13 14:39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노스볼트를 어떻게 뚫었냐고요? 무작정 스웨덴 스톨홀름으로 찾아갔죠."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를 고객사로 둔 국내 장비 업체 제일엠앤에스. 3년 전 30대 후반의 2세 경영인인 이영진 대표는 구글 검색을 하다 노스볼트를 알게 됐고 홈페이지에 있는 공식 이메일로 회사 소개서와 사업 제안서를 보냈다. 예상대로 아무 답장이 없자 이 대표는 무작정 스웨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도착한 스톡홀름에서 다짜고짜 노스볼트에 전화를 걸었다. 스웨덴에 도착했으니 일단 만나자고. 어렵사리 성사된 파올로 세루티 노스볼트 최고운영책임자(COO)와의 미팅은 이 대표의 무모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조차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던 셈"이라고 회상했다.
제일엠앤에스는 어떤 회사?
지난 7일 양재동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이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팅 당시 노스볼트가 사용하던 일본, 중국 회사 장비들이 문제를 일으켜 기회를 얻었다"며 "장비 운송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가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금방 보낼 수 있는 항공 운송을 택했고, 이것이 노스볼트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입을 열었다.

제일엠앤에스는 1981년 설립된 믹싱 장비 전문 기업으로, 2021년 7월 제일기공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배터리 사업 유행이 불기 전인 2000년대 초 선제적으로 이차전지 믹싱 분야에 진출하며 본격적인 성장 기반을 닦았다. 현재 배터리를 비롯해 방산, 제약, 식품 등 다양한 부문의 설비 생산이 가능한 회사로 발돋움했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체를 비롯해 노스볼트가 주요 고객사다.

제일엠앤에스가 노스볼트와 첫 협력 관계를 맺은 건 2020년이다. 2019년 중국 전극 공정 A사에서 공급한 믹싱 장비가 문제를 일으켰고 노스볼트의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이듬해 노스볼트는 A사 대신 제일엠앤에스로 장비 공급사를 교체했다. 단시간 장비가 교체되는 건 배터리 업계에선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노스볼트의 해결사로 투입된 제일엠앤에스는 품질과 생산 속도에서 차별화를 보였다. 생산성이 눈에 띄게 개선되자 노스볼트는 제일엠앤에스를 우수 장비 협력사로 선정했다. 이 대표의 무모한 도전이 도리어 노스볼트에게 득이 된 것이다.

이 대표는 "노스볼트에는 수천 리터(ℓ)급 대용량 믹싱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는데, 우리는 현재 3000ℓ 이상 믹싱 장비까지 개발을 마친 상태"라며 "일본이 앞서 있던 대용량 믹싱 시스템을 국산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매출은 2017년까지 100억원대에 그쳤지만 2018년 386억원, 2019년 346억원, 2020년 510억원, 2021년 825억원으로 실적이 크게 뛰었다. 지난해엔 61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배터리 장비 시장 본격적으로 열리는 중"
제일엠앤에스의 주력 제품은 배터리 믹싱 장비다. 이 장비는 배터리 제조 과정 중 가장 먼저 진행되는 '전극 공정'에서 활용된다. 배터리 믹싱은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데 필요한 활물질(리튬이온을 흡수·방출하면서 전기를 저장하거나 생성하는 소재)과 도전재(전기 및 전자의 흐름을 돕는 소재) 등을 혼합하는 공정을 뜻한다. 이때 쓰이는 장비가 배터리 믹싱 장비다. 제일엠앤에스는 이 장비를 제조하고, 시스템 라인을 설치한다.

배터리 믹싱 장비는 큰 통 안에 두 개의 블레이드(회전날)가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다. 회전 방향이 반대되는 두 개의 블레이드가 다른 속도로 통 안에서 돌아가며 입자를 갈고 재료를 섞는다.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밀가루 반죽 기계와 흡사한 형태다. 믹싱은 크게 건식 믹싱과 습식 믹싱으로 나뉜다. 건식 믹싱은 가루, 습식 믹싱은 액체 형태의 재료를 섞는 작업이다. 원자재를 정확한 비율만큼 믹서기에 넣으면 믹서 안에서 고속으로 돌아가는 두 개의 블레이드가 재료를 '반죽(Kneading)'하고 '분산(Dispersion)'시킨다.

이 대표는 "양극재의 경우 니켈·코발트·망간(NCM)이냐,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이냐, 리튬인산철(LFP)이냐에 따라 설비 세팅을 각기 다르게 해야 한다"며 "재료가 잘 섞이게 만드는 건 기본이고, 장비 업체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지 보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믹싱 장비의 판매 가격보다 유지보수 매출 비중이 더 크다.


리튬이온 배터리 산업에서 사용하는 믹서 높이는 아파트 4층 높이와 맞먹는다. 높이 8~9m, 폭이 3.5~4m 정도다. 여기서 재료를 섞는 블레이드와, 블레이드를 회전시키는 구동부가 닳기 전에 관리와 유지 보수를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제일엠앤에스가 경쟁사보다 유지 보수 능력이 뛰어나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1개의 설비 라인을 먼저 발주한 후 몇 개월 뒤 추가 라인 발주가 이어졌는데 요즘은 한 번 발주할 때부터 3~5개씩 한꺼번에 발주가 들어온다"며 "배터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맞춰 장비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경쟁사로는 윤성에프앤씨, 티에스아이가 있고, 해외에는 중국의 리드차이나, 일본의 이노우에, 아사다, 스위스의 뷸러, 독일의 네취 등이 있다. 이 대표는 "경쟁사와 구분되는 점은 2차전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약·식품, 우주항공 사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반기 IPO 예정…글로벌 진출 가속화
제일엠앤에스는 늘어나는 배터리 장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을 300명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 대표는 "배터리 라인은 잠시만 멈춰도 엄청난 손실이 나기 때문에 현장 이해도가 높은 배터리 장비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게 시급하다"며 "장비 개발뿐만 아니라 장비 세팅, 유지 보수 경쟁력을 더 갖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반기에는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확보한 투자금으로 장비 개발과 설비 투자, 해외 인프라 구축을 강화해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향후 3년간 국내에서만 연간 믹싱 발주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이 대표는 예상했다. 그는 "지난해 수주 잔고는 전년대비 3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부터 매출에 본격 반영된다"며 "올해는 전년 대비 4~6배 증가한 매출 달성이 확실시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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