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2008년 4월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제작한 PD들은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11년 9월 대법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면서도 PD들에게 적용된 명예 훼손 및 업무 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방송국 차원의 사과와 정정보도가 있었지만, 당시 시사교양국 부장은 훗날 MBC 사장까지 지냈다. 대놓고 편파적이기로 작정한 일부 지상파 방송사의 얘기지만 일반인들이 구분하기는 어렵겠다 싶다.
반면 정치인의 의혹 제기는 다르다. 실체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휘발성 있는 의혹을 제기해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고 자기 진영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했느냐가 중요하다. 의혹 제기의 목적이 반드시 공익이 아니라는 것도 언론과의 차이점이다. 모든 아젠다가 해당 이슈에 빨려 들어가고 진영을 결집할 수 있으면 성공한 의혹 제기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청담동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거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사주를 받은 깡통 보고서를 내놨다는 의혹 등이 좋은 사례다.
이 판결에 따라 MBC는 정정보도와 사과 보도를 내보내야 했지만, 정치인들이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정정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안이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야당의 의혹 제기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업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둔 건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입증할 방법도 없고, 경위를 소명해봐야 어차피 ‘답정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사과가 선행돼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쩌면 의혹 제기자에게 입증 책임을 돌릴 제도적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일 테다.
문제는 사회적 비용이다. 야당이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이렇게 대처할 수는 없다. 국회 안에 의혹 제기자에게 입증 책임을 묻도록 하는 ‘의혹 심의위원회’라도 설치해야 하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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