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전 총리 간 이른바 ‘명낙회동’이 불발됐다. 저녁을 겸한 ‘막걸리 회동’을 하기로 했으나, 당일 오후 4시30분쯤 취소하고 날짜를 다시 잡기로 했다. 2021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이 전 총리 귀국 후에도 17일이나 지나서야 만날 예정이었는데, 이 또한 미뤄진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폭우다. 물난리 중 떠들썩한 자리를 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것이라는데, 두 사람과 배석자 한 명씩 2+2 소규모 자리에서 그런 지탄받을 상황이 생겼을까 싶다. 그보다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으로 비 핑계를 댄 듯하다. 양측 지지자 간 전쟁터가 된 민주당 당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명낙회동을 하면 탈당할 것”이란 ‘협박’ 글들이 있다.
‘수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은 더 궁색하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재난을 무기화하는 데 능숙한 민주당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는 데도 ‘재난’을 들먹이고 있다. 그동안 재난 프레임만 씌우면 온 사회가 항변할 수 없는 집단 무기력에 빠져든다는 것을 터득한 듯하다.
호우에 막걸리 자리가 찜찜했다면, 차 마시는 자리로 했으면 되지 않을까. 폭우를 뚫고도 만나는 모습에 화합의 진정성이 더 느껴졌을 것 같다. “사랑은 핑계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언어의 온도/이기주)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설득력 없는 호우 핑계를 대며 문턱을 더 높이고 있다. 트럼프는 사태 전개가 불리해 보이자 6시간 만에 ‘회동 취소’를 취소하고 NYT를 방문했지만, 두 사람은 날짜도 바로 잡지 않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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