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책이 잔뜩 쏟아지는 가운데 ‘애서가 중 애서가’들에게 부탁했다. 여름 휴가지에서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국경제신문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 아르떼에 책 추천 칼럼 ‘탐나는 책’을 싣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 12명이 답을 보내왔다.
‘여름’ 하면 공포물이다. 등골 서늘한 스릴러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판타지·호러 단편소설 10편을 담고 있는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복수의 편집자에게 추천을 받았다. 저주와 복수, 유령 같은 비현실적 소재로 현실 사회의 비이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우화 소설이다.
작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글항아리 출신 독립 편집자 박은아 씨는 “악천후가 지나고 맑게 갠 하늘이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 때에는 우중충하게 휘몰아치는 소설집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백다흠 은행나무 문예지 ‘악스트’ 편집장이 권한 소설집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도 무더위를 씻어줄 만한 책이다. 강화길 등 젊은 소설가 8명이 도시괴담을 테마로 쓴 소설을 묶었다.
추천도서 목록에는 다수의 시집도 이름을 올렸다. 황인찬 시인의 신작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는 중복표를 받았다. 박선우 마음산책 편집2팀장은 “낯선 풍광 속에서 읽은 시 한 편은 당시 기억과 함께 오래 마음속에 담긴다”며 “산산한 아름다움이 깃든 황인찬의 시는 그 어떤 여름 이미지와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름과 여행, 휴식을 키워드로 삼은 책도 눈에 띈다. 새를 관찰하는 활동, ‘탐조’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책 <새의 감각>이나 각양각색 구름의 세계를 다룬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평범한 사람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져 대화를 이어가는 <궁금한 건 당신> 등은 일상을 여행처럼 만들어줄 법한 책들이다.
회사에서 날아오는 각종 메신저와 메일 알람을 꺼두듯 복잡한 생각은 차단해버리고 싶다면 만화책만 한 게 없다. 이재현 문학동네 편집자가 추천한 <성질 나쁜 고양이>는 일본 대표 만화가 야마다 무라사키가 여성으로서 자신이 느꼈던 진솔한 감정들을 고양이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만화책이다. 이 편집자는 “푹푹 찌는 여름에는 역시 수박과 선풍기, 햇빛 그리고 고양이 만화”라고 했다. 정기현 민음사 편집자는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책 <산책>을 추천하며 “매일 걷던 동네에서 새로운 장면을 목격하는 <산책>의 산책자를 통해서라면 여행길 역시 보다 자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휴가는 평소 도전하지 못했던 두터운 인문서를 완독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김현주 문학과지성사 편집2부 편집장은 이번 여름휴가에 비자이 프라샤드의 <갈색의 세계사>를 읽어볼 것을 권했다. 제3세계의 눈으로 본 20세기 현대사를 다룬 508쪽짜리 책이다. 그는 “‘제3세계’의 정치사라니,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면서도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한 제3세계 프로젝트의 흥망성쇠를 살펴보고 그 기억을 발굴해내는 일은 그 어떤 대안도 떠올리기 어려운 오늘날에 꼭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의 건강 수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도 함께 추천했다. 최 편집장은 “‘올해는 건강에 신경 좀 써야지’라던 연초의 다짐이 무너진 지 오래일 것”이라며 “휴가를 한껏 방탕하게 즐기고, 복귀 후에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 하반기를 버틸 힘을 만들어보시라”고 권했다.
일터에 복귀하면 그간 미뤄뒀던 업무 회의, 발표, 보고 일정이 카드 고지서처럼 날아들 것이다. 휴가모드에 들어갔던 뇌를 다시 깨워 적확한 정보를 출력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말 잘하는 법’이다. 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은 정연주의 <말을 잘한다는 것>을 추천하며 “두려움 없애기부터 말실수 피하는 법까지 담은 ‘말하기의 정석’ 같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구은서/임근호/안시욱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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