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유통업계 관계자의 말은 홈쇼핑의 좁아진 입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해 홈쇼핑에서 TV방송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 50%선이 처음으로 깨졌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 고성장 속 라방 공세까지 덮친 결과다.
14일 TV홈쇼핑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TV홈쇼핑 7개 법인의 합산 매출(5조8721억원)에서 TV홈쇼핑(2조8998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9.4%로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지난해 전체 매출은 전년보다 0.3% 늘며 제자리를 지켰으나 TV홈쇼핑 매출은 3.7% 감소한 결과다.
TV홈쇼핑의 방송 매출액 비중은 꾸준히 하락세를 나타냈다. 2018년 60.5%였던 매출 비중은 2019년 56.5%, 2020년 52.4%, 2021년 51.4% 등으로 내려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실내활동이 늘면서 2020∼2021년 TV홈쇼핑 업계가 다소 반사이익을 누렸으나 추세 전환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로 한층 직격탄을 맞아 TV홈쇼핑 매출이 3조원 미만으로 내려가면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 아래로 밀렸다. 상품가격 판매 총액을 뜻하는 취급고의 경우 TV홈쇼핑 비중이 수년 전 50% 아래로 밀렸다. 지난해에는 45.9%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TV 시청자 수 감소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발달과 이커머스 TV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TV 시청과 TV홈쇼핑 이용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TV 이용시간(유료 방송 포함)은 하루 평균 2시간36분으로 전년(2시간51분)보다 줄어 감소 기조를 이어갔다. '일상생활 필수매체'로 TV를 인식하는 비율은 27.5%에 그쳤다.
TV홈쇼핑 주 시청 연령층마저 TV 이탈 현상이 두드러지는 추세도 포착됐다. 일상 필수매체로 TV를 꼽은 60대는 2018년 72.8%에서 지난해 52.5%로 떨어졌고, 50대 역시 50.2%에서 31.8%로 떨어졌다. 특히 증가하는 1인 가구 중에선 TV를 아예 보유하지 않은 가구도 있었다. 1인 가구의 TV 보유율은 90.4%로 전체 가구(95.4%) 보다 낮게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10.3% 증가한 209조8913억원으로 집계됐다. TV홈쇼핑 전체 취급고(TV홈쇼핑산업협회 기준 21조7776억원)의 10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불어났다.
유통업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넘어간데다 네이버, 유튜브 등에서 '라방'으로 불리는 라이브커머스 채널이 등장하면서 홈쇼핑의 입지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에 각 홈쇼핑 기업들도 자체 라방 채널을 만들며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가상인간(버추얼 휴먼)을 기용한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선보이는가 하면, 예능인과 방송인을 적극 기용해 인포테인먼트 형식 콘텐츠로 시청자 끌기에 나섰다. 상품군도 온라인 강의, 리퍼비시(refurbish·리퍼) 상품 등으로 확장해 늘리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곳도 있다. CJ온스타일은 지난달 30일 시작한 유튜브 쇼핑에 동참하기로 했다. 절대적인 사용자 기반을 보유한 유튜브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장조사 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유튜브는 지난해 국내 모바일 앱 사용 시간 1위(175억시간)다.
과거 충성고객층을 이끈 스타 쇼호스트들이 최근 물의를 빚은 점 역시 홈쇼핑업계의 부담 요인이다. '완판녀', '1분당 1억녀' 등 별명을 가진 쇼호스트 정윤정씨가 생방송 중 욕설을 해 물의를 빚었고, 유난희씨는 화장품 판매 중 고인이 된 연예인의 지병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해마다 커지는 송출 수수료 부담에 홈쇼핑업체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송출수수료는 TV홈쇼핑사가 유료방송사업자로부터 채널을 배정받는 대신 매년 지불하는 비용이다. 지난해 송출수수료 규모는 전년보다 5.5% 증가한 1조9065억원이었다. 2018년(1조4304억원)과 비교하면 33.3%나 늘어난 수치다. 방송 매출 비중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송출수수료는 오름세를 나타내 홈쇼핑업체들의 부담이 커진 모양새다.
올해 1분기 롯데 현대 CJ온스타일 GS 등 4사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보다 감소세를 면치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방송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롯데홈쇼핑의 경우 새벽시간대 방송금지 등 일회성 요인이 작용했으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6%, 87.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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