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바이오협회가 의약품 가격인하를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바이오 산업의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내 바이오제품 생산 등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모든 정치인들이 새로운 생산시설 앞에서 리본을 자르고 싶겠지만 그것이 최선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낸시 트래비스 미국바이오협회 국제협력 부사장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플러스 인터펙스 2023’의 ‘바이든 행정명령, 한국바이오경제의 영향’ 전문세션에서 IRA 법안에 대해 “굉장한 우려를 표한다(very concerned)”라고 13일 말했다.
IRA는 말 그대로 급격한 물가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다. 노년층을 위한 공보험인 메디케어가 제약사에 주는 약값과 관련해 미국 공공의료보험기관(CMS)이 협상권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오는 9월 협상대상인 ‘파트D’에 해당하는 의약품 10개가 발표된다. 협상기간은 오는 10월 1월 시작돼 내년 8월 마무리된다. 약가에 대한 효력은 2026년부터 시작된다.
CMS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연구개발(R&D) 비용, 제조 및 유통비용, 매출 등의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약가를 정할 예정이다. 대체 치료제에 대한 정보도 기업에게 요구하고, 공유 가능한 범위에 한해 해당 정보를 환자나 주주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트래비스 부사장은 “물가상승보다 더 빠르게 약값을 올리는 회사들은 정부에 리베이트를 내야 한다”며 “정부가 해당 리베이트를 소비자들과 공유할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IRA 법안이 굉장히 도전적(challengeable)이지만 초안은 더욱 심했다(worse)”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세션에서 트래비스 부사장은 CMS의 약가협상권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노년층들이 이점을 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IRA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제약·바이오산업 혁신에 미칠 영향이 걱정(worried)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바이탈 트랜스포메이션(v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연구·조사기관이 2014년에 IRA를 적용한 뒤 10년뒤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니, IRA 법안의 영향을 받는 의약품들은 매출 40%가 깎였으며 24~49개의 치료제는 개발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트래비스 부사장은 설명했다.
현재 미국 머크(MSD) 등 글로벌 빅파마들은 IRA가 위헌이라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상태다. 이에 대해 트래비스 부사장은 “(소송에 대한)입장을 밝힐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라면서도 “가격 컨트롤이 혁신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deep concern)를 표한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이 해외 기업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가뜩이나 어려운 바이오 투자환경을 더 어렵게 만들까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션에 참석한 힐러리 스티스 미국바이오협회 국제협력 국장은 자국 내 바이오 생산시설 유치 등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명령’의 실효성에 대해 지적했다. 스티스 국장은 “행정명령의 구체적인 사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각 부처의 시행계획서가 제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 나라가 모든 걸 할 순 없으며, 미국 정부는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스티스 국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의약품 수급 부족 등을 겪은 각 나라들이 ‘우리 혼자서도 모든걸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는다”며 “국제협력을 강화해야 또 다른 펜데믹이 오더라도 각자의 장점을 살려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협력하기 위해서는 정직(honest)해질 필요가 있다”며 “모든 정치인들은 새롭고 멋진 공장 등의 생산시설 앞에서 리본을 자르고 싶어하겠지만 그것만이 최선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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