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수술이 끝나 숨 쉬는 것도 버거운데 강제로 퇴원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13일 서울 사근동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앞에서 만난 A씨는 병원 측에서 “당장 퇴원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파업으로 인력이 부족하다며 이제 막 심장 수술을 끝내고 가슴 부위를 꿰맨 저를 나가라고 했다”며 “강북삼성병원으로 가볼 예정인데 거기는 어떨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4년 이후 19년 만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총파업에 들어간 이날 전국 주요 병원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환자들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수술을 받은 뒤 회복이 안 된 상태로 강제 퇴원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환자와 병원 직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진료를 예약하고 병원에 왔다가 발길을 돌리던 환자들은 “최소한 노인 등 위험 환자는 치료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원들은 이날 의료 현장을 뒤로한 채 서울 청계광장 교차로부터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번 출구까지 약 500m 거리의 5~7개 차로를 점거했다. 경찰 추산 145개 사업장(의료기관) 조합원 1만7000여 명(주최 추산 2만 명)이 참가했다. 주 참여자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약사 등이었다.
이날 한양대병원 진료실 곳곳에선 환자들이 직접 혈압을 재는 풍경이 벌어졌다. B씨는 “간호사가 없어 스스로 혈압을 쟀는데 평소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며 “의사가 혈전제 양을 줄인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필수 인력은 파업에서 제외했다고 했지만 이곳 응급실 중환자 병상은 이미 오전에 정원 20명이 꽉 차 있었다. 의사들은 간호사가 없어 직접 환자를 호출하며 진료를 봤다.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역시 진료를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환자가 줄을 이었다. 환자 서준구 씨(68)는 “파업이 길어지면 다음주 진료도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고령 노인만이라도 배려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 일산 마두동 국립암센터는 노조와 경영진이 극적으로 병원 정상화에 합의해 이날 큰 혼란이 없었다. 전 직원 3000여 명 중 휴무 인원을 포함해 200여 명만 집회에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는 파업 우려에 사전 취소했던 이날 외래진료를 재개했고, 수술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를 고려해 노조가 조건 없이 병원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이날 파업에는 국립중앙의료원 등 전국 상급종합병원 45곳 중 40%인 18곳이 참여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고려대 안암병원, 경희대병원 등은 119종합상황실과 다른 병원에 환자 이송과 전원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수원 아주대병원은 응급실의 환자 입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5대 병원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 도심 민주노총 집회는 동화면세점에서 대한문 방향 세종대로 5∼7개 차로가 통제되면서 일대에 극심한 교통 정체가 이어졌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종로구 일본대사관과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방향으로 각각 나뉘어 행진했다. 비를 피해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등에 집회 참가자가 몰리면서 시민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모씨(25)는 “조합원은 반드시 참가해야 해서 이 자리에 왔다”며 “다만 우리의 노동 환경 개선이 아니라 대통령 퇴진 등 정치파업 성격을 띠고 있어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고 말했다. 14일에는 서울·세종·부산·광주에서 파업 2일차 총파업대회를 연다.
조철오/안정훈/이광식 기자 cheo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