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환자 A씨는 올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면역 치료를 받기 위해 다섯 차례 일본을 다녀왔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 현지 클리닉에서 혈액을 30㏄ 뽑은 뒤 2주 후 다시 일본을 찾아 주사를 맞는 방식이다. 한 차례 치료할 때마다 100억 개의 면역세포를 넣는 주사를 한 시간가량 맞고 돌아왔다. 다섯 차례 치료를 위한 의료비만 4000만원에 컨디션 등을 고려해 보호자인 아내와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온 비용 등을 고려하면 1억원 가까이 들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A씨가 받은 치료를 국내에서 받게 되면 10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20년 국내에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첨생법)이 시행되면서 환자들이 더 이상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많은 암 환자가 면역치료를 위해 해외를 찾고 있다.
일본은 재생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시설로 인정받으면 시술의 목적 등에 대해선 별다른 규제가 없다. NK세포 등 면역세포 치료 시설로 인증받은 클리닉을 찾아 암 환자가 주사를 맞는 것은 물론 면역이 떨어진 고령층까지 활용할 정도로 시술이 폭넓게 쓰이는 요인이다.
반면 국내에선 시술을 폭넓게 하지 못한다. 다른 치료제가 없는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으로 범위를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시술한 뒤 비용을 받는 것도 금지됐다. 의료기관에선 ‘연구용’ 시술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선 의료기관에서 세포 시술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위험도가 높은 의료로 분류된 줄기세포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요구하는 각종 품질관리 기준도 맞춰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 차례 투여할 때마다 외래성 바이러스 검사를 거치는 등 품질 기준을 8개 정도 충족해야 하는데 대부분 자가 줄기세포 치료에는 필요 없는 것”이라며 “이런 조건을 모두 없애면 800만원 정도인 한 회 투여 비용을 200만원까지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도 기술력은 갖췄다는 평가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보유한 세포 치료제 기술로 해외에서 육종암 등을 치료한 성과도 보고됐다. 강정화 이뮤니스바이오 대표는 “기술이 이미 갖춰졌기 때문에 세포 치료를 육성하면 성형 외에도 다양한 의료관광 산업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이런 요구에 맞춰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재생의료 시술을 도입해 일선 의료기관에서 돈을 받고 자가세포 시술 등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의료 규제 완화를 민영화로 바라보는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에 막혀 제도가 또다시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3월 바이오 규제 혁파 과제를 선정한 뒤 후속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환자 불편을 줄일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김유림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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