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 노동자 350만명을 대체할 ‘자동화’의 비밀 [긱스]

입력 2023-07-17 16:01   수정 2023-07-17 16:02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의 '당일배송·새벽배송'이 전 세계 이커머스 공룡기업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빠른 배송을 위해 물류 자동화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팔레타이징, 무인운반 및 분류 로봇 등 관련 장비를 생산하거나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도 호재를 맞고 있습니다.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이 한경 긱스(Geeks)를 통해 물류 자동화 시장 트렌드를 한눈에 정리합니다.


‘K-커머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이커머스 배송시스템은 특별합니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집 앞에 상품이 도착하는 배송 속도가 특히 장점입니다. 뉴욕타임스도 쿠팡의 나스닥 상장 당시 “당일배송, 새벽 배송이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서를 사로잡았다”고 평가한 바 있죠.

과거 국내 일부 플랫폼 업체들의 특별한 서비스였던 빠른 배송은, 이제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의 표준서비스가 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물류센터의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소비 증가로 처리할 상품은 늘어나는데 속도는 빨라져야 하니 물류센터가 지역 곳곳에 세워져야 합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물류센터를 확보할 때마다 부동산 비용 외에도 막대한 인건비가 발생합니다. 물류센터가 늘어날수록 이커머스 기업들이 부담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죠. 결국 물류센터에서 보다 많은 물품을 저장하고, 적은 인원을 활용하는 ‘효율화’가 향후 이커머스 기업의 실적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물류 자동화’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물류센터가 늘어나는 이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빠른 배송 서비스는 물류 혁신의 결과물입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택배는 판매자가 상품을 배송하면 근처의 영업소에 상품이 도착하고 이후 물류허브를 거쳐 최종배송지의 영업소로 전달되는 구조입니다.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3~4번의 걸쳐 배송이 이뤄지는 시스템이죠.

당일배송, 새벽 배송은 이런 물류 단계를 절약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사업 형태가 등장합니다. 바로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입니다. 판매자의 상품을 입고, 포장, 재고관리, 발송까지 모두 도맡아서 처리해주는 서비스라고 보면 됩니다. 여러 단계의 배송 절차를 통합하니 오배송은 줄고 속도는 빨라지게 됩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유리합니다. 재고관리, 포장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풀필먼트 서비스에 위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의 대표 이커머스인 아마존이 처음 고안해낸 이 시스템은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을 통해 새벽 배송, 당일배송 등의 서비스로 발전했습니다. 쿠팡과 컬리와 같은 기업은 빠른 배송으로 확보한 고객을 기반으로 상품판매자들에게는 대량판매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도입해 판매자들의 상품을 재고로 쌓아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처리하게 됩니다. 미국 등에 비해 이동 거리가 길지 않은 한국의 특성상 이런 형태는 새벽 배송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차별화된 전략으로 현재의 국내 이커머스 공룡들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풀필먼트를 기반으로 한 사업확장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내 이커머스 3 대장으로 불리는 ‘네·쿠·쓱(네이버, 쿠팡, SSG)’은 자체적으로 풀필먼트 센터를 보유하거나, 풀필먼트 전문기업들과 협업하는 형태로 배송서비스를 더 고도화시키고 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가파릅니다. 아마존 역시 올해 초 ‘당일배송’을 선언하며 많은 풀필먼트 센터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2026년까지 연평균 7~10% 성장, 풀필먼트 서비스는 연평균 62% 성장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대로 가면 350만명이 필요할까?

풀필먼트 서비스 수요의 증가로 필요한 물류센터의 숫자도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국가물류정보통합센터 통계에 따르면 2023년 5월 전국 기준 물류창고업 등록 숫자는 4801개로 2021년 이후 매년 500개 이상의 물류센터가 신규로 등록되고 있습니다. 특히 롯데, CJ, 쿠팡의 확장세가 가파릅니다. 최근에는 입지가 좋은 버스터미널이나 주유소를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계획들도 속속 등장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노동력’입니다. 아직도 물류센터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갑니다. 그만큼 물류센터 일은 노동강도가 강하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고, 인건비는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선진화된 시장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존과 UPS의 경우 창고인력 부족으로 면접이나 신원조사 없이 직원 채용에 나서기도 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기간 동안 물류센터 인원은 70만명 늘었고, 평균 시급은 약 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장조사업체인 인터랙트애널리시스는 이커머스가 지금과 같은 추이로 성장할 경우 전 세계의 물류센터는 2020년 15만600개에서 2025년 18만개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합니다. 이때 필요한 근로자는 350만명에 달합니다.


물류 자동화의 과정

많은 유통 공룡들은 이런 문제의 해법을 ‘물류 자동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현재의 물류센터에서는 크게 상품입고→보관→상품피킹→분류→출고의 작업이 일어납니다. 일반적인 물류센터를 생각하면 상품들이 적재되어 있고 길을 따라 지게차가 움직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상품을 배송 차량에 싣고 내리고, 또 이것을 분류하게 됩니다.

물류 자동화는 이런 과정을 로봇으로 대체하고 물류 흐름을 소프트웨어로 제어하게 됩니다. 센터 내의 상품 이동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어디로 보낼지 자동으로 분류해 기계가 배송 차량에 적재하게 됩니다. 자동화가 될 경우 물류센터에서 지게차가 다니는 공간 등을 줄일 수 있어 보관량이 늘어나게 되고, 인건비도 줄어들게 됩니다.

여기에는 많은 기술이 접목되고 있습니다. 물류의 흐름대로 살펴보면 우선 차량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실을 때 팔레타이징(Palletizing)이라고 하는 기술이 사용됩니다. 상품을 팔레트 위에 쌓거나 팔레트의 상품을 내리는 작업을 말하죠. 로봇이 상품을 하나하나 이동시켜주는 작업입니다. 이후 상품은 컨베이어벨트 등을 통해 거대한 자동창고로 보내집니다. 자동창고는 상품을 사용 빈도에 맞게 적재해주고, 자동으로 꺼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자동창고에서 상품이 나오고 이 상품들을 쌓은 팔레트나 선반을 AGV(Automated Guided Vehicle)라는 로봇이 이동시켜줍니다. 최종목적지로 보내기 위한 분류 역시 컨베이어시스템 및 소팅(분류)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마지막으로 포장 단계에서 자동 라벨링, 테이핑 등을 거쳐 최종목적지로 가는 차량에 물건이 적재되는 구조입니다.

현재 상품을 반출하는 피킹 단계에서 포장 단계까지 현장 작업 시간의 60~70%가 소요되는데 이런 자동화 장비를 도입할 경우 이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막대한 물류를 빠르게 인식하고 처리하고 이동시켜주는 것이 물류 자동화 기술의 핵심이며 이 기술이 발전할수록 물류센터의 효율성은 올라가고, 비용은 절감되는 구조죠.

이커머스 공룡의 투자 경쟁

이미 많은 유통 공룡들은 이런 물류 자동화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물류 자동화 과정에 필요한 핵심기술 4가지를 선정해 지속적인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물류 이동에 프로테우스라는 완전 자동화 이동로봇을 사용하고 있고, 팔레타이징 등에 활용되는 로봇팔 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카메라로 바코드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이동 경로 추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합니다. 쿠팡은 자동화 물류에 1조원 이상을 투자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무인운반 로봇(AGV) 및 분류 로봇(소팅 로봇) 등 1000여대 이상의 로봇을 활용한 축구장 46개 규모의 대구 풀필먼트 센터를 공개하기도 했죠. 특히 소팅 로봇 도입은 직원 업무량을 65% 감축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CJ대한통운은 곤지안 메가허브터미널과 대전 허브터미널 등에 최첨단 자동화 설비를 배치해 작업효율을 늘리고 있습니다. SSG 역시 2020년 1조원 이상의 투자계획을 세우고 배송 전 과정의 80% 자동화를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국산화 수요 증가에 웃는 스타트업

물류 자동화 전환은 국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에도 호재입니다. 물류 자동화 시스템의 경우 물류센터의 입지와 구조, 상품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게 설계해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센터별로 개별 설계가 이뤄져야 하고, 각 장비의 연동이나 유지보수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기업보다는 국내기업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동화 장비의 경우도 과거에는 해외 제품 수요가 많았지만, 소프트웨어 연동 및 유지보수 문제로 국산화 장비 선호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 역시 해외 장비에 못지않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류 자동화 국산 장비 비중은 2015년 46.1%에서 2020년에는 53.9%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인 정보시스템 분야는 국산 비중이 2015년 40.0%에서 2020년에는 97.7%까지 증가해 현재는 대부분 국내 기업들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서도 스마트물류에서 국산 장비 선호도는 63.1%로 외산 장비 만족도보다 높습니다.

자연스럽게 컨베이어, 소터 등 자동화 장비 부분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가파릅니다. 관련분야 중소기업인 보우시스템, 우양정공, 가치소프트 등은 물류센터 확장 추이에 힘입어 지난해까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류 자동화 관련 스타트업의 투자유치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풀필먼트 사업을 전개하는 AI 물류 플랫폼 파스토는 지난해 8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물류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는 트위니, 플로틱의 경우도 네이버, 카카오, 미래에셋 등에서 투자를 유치한 바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인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물류 자동화 시장 규모는 글로벌 기준으로 2026년 약 44조원으로 예상됩니다. 연평균 10.6%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의 경우는 더 가파른 성장세가 예측됩니다. 연평균 성장률은 11.5%로 2025년 국내 시장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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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관찰하고, 이를 주도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 마중물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매일 스타트업을 만나 혁신적인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스타트업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여러 경험에서 쌓은 넓고 얕은 지식이지만 스타트업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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