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경제 교과서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의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나마 기업인을 다룬 교과 과정에서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 외국 기업인을 주로 기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등을 경제 교과서가 아니라 국정 역사교과서에 싣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교과서 폐기로 무산됐다.
현재 경제 교육은 초·중학교에선 공통 과정인 ‘사회’ 과목을 통해, 고교에선 문·이과 공통 과정인 ‘통합사회’와 선택 과정인 ‘경제’ 과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1년 양준모 연세대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 고교 경제 교과서는 기업과 기업인의 노력 등에 관한 이야기를 배제해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만난 양 교수는 “경제 발전은 근로자와 기업인, 정부, 가계가 혼연일치돼 이룬 성과이고 특히 기업인들의 혁신이 중요하다”며 “현행 경제 교과서는 기업가정신을 다루지 않다 보니 학생들에게 마치 경제가 저절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은 다르다. 미국은 교과서에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존 록펠러, JP모간 창업자 존 피어폰 모간에서부터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잡스 등까지 다루고 있다. 일본은 자국의 ‘자본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오사카방직 창업자를 비롯해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현지 대표 기업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경제 교과서가 시장경제의 핵심 개념인 ‘자유경쟁’ 대신 ‘기업 책임’이나 ‘소득 분배’ 등을 강조하면서 기업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소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 통합사회 과목에서의 경제교육’ 보고서에 따르면 고교 통합사회 과목은 기업가 등 경제 주체의 역할을 ‘시장의 한계’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 조건을 향상하는 것이 기업가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탐구하자는 식이다. 마치 기업가가 노동자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한 교과서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과 함께 자선적 책임을 들고 있다.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 본연의 목적 및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이러다 보니 경제 교과서에 기업가정신이 들어가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이념 편향적이라는 교육 현장의 불만이 나온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열린 ‘K기업가정신 진주 국제포럼’에는 세계 47개국에서 150여 명이 참석해 한국 기업인들의 철학을 고찰했다. 외국인 참가자 사이에서는 “K기업가정신이 K팝처럼 주목받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미 피터 드러커도 2002년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한국을 기업가정신이 가장 고양된 나라로 꼽았다. 물론 경제발전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 기업인의 어두운 과거도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공적과 별개로 서술하면 될 일이다.
기업가정신 교육은 고교뿐만 아니라 초·중학교에도 확대돼야 한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교실에서 회자해야 한다.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교과서는 표지와 제목 빼고 다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가정신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정신이 경제 교과서 개편에 반영돼야 한다. 더불어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에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기업가정신이 구현돼야 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