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ST)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증권사와 은행의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 이들은 ST 업체와 협약을 맺고 자사의 MTS·HTS에서 ST를 공모·매매할 수 있게 해 주거나, 투자자의 예치금 보관용 계좌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장 잠재력이 확인되면 ST 발행을 직접 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ST 장내 시장을 만드는 작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발행사의 건전성과 관련한 상장 요건은 자기자본 규모 20억원 이상, 공시 연 2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는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통해 ST 시장을 연내 개장할 계획이다. 새로운 투자 시장 창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른 증권사들도 ST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업무협약을 맺느라 분주하다. 증권사당 협력 업체 수는 적게는 3곳에서 많게는 20~30곳에 달한다. 이들 ST 업체의 기초자산은 다양하다. 미술품이나 부동산이 가장 많이 눈에 띄고 원자재, 콘텐츠, 한우 등에 대한 ST를 발행하는 업체도 있다.
은행권도 ST 업체와 협약을 맺고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다. 농협 신한 우리 기업 전북 수협 등 6개 은행은 ST 발행 업체 11곳과 최근 컨소시엄을 구성해 업무 협의를 시작했다.
증권사와 은행은 ST 시장이 형성되면 일단 이들 업체를 측면에서 지원한다. 증권사의 역할 중 가장 주목되는 건 ST 장외 시장 개설이다. 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통해 하반기에 관련 시장이 만들어지면 한국거래소는 장내 시장이 되고, 증권사가 자사 MTS·HTS에서 ST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하면 이는 장외 시장이 된다. 상위권 증권사는 과반수가 ST 장외 시장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개별 업체가 여기서 ST 공모를 하고, 투자자는 해당 MTS·HTS에서 이를 주식처럼 매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ST 업체가 협력 증권사와 은행을 찾는 건, 증권 발행 사업자(ST 업체)가 증권 유통과 예치금 보관을 겸영하는 게 관련 법령에 따라 원칙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증권사와 은행은 ST 업체와 협력하면 계좌 제공 등에 대한 수수료를 얻을 수 있다. 보다 중요한 목적은 ST 시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관련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시장이 커진다는 확신이 들면 나중에는 발행까지도 직접 하겠다는 게 이들의 복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T 시장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추후 필요하면 더 깊이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ST 공모·유통 지원은 관련 노하우를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접 발행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반 정도 된다"며 "시장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먼저 지켜보고 나중에 직접 발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연구기관들은 일단 ST 시장의 고속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내년에 국내에서 ST 시장이 개설될 경우 시가총액은 첫해 34조원 수준이고, 2030년에는 367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씨티은행은 글로벌 ST 시장이 현재 20조~30조원에서 오는 2030년 5200조~65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본다.
장내 시장과 관련해 최근 ST 발행사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건 '상장 요건'이다. 거래소는 최근 이를 집중 검토해 '자기자본 20억원 이상'과 '회계감사보고서 연 2회 공시'를 ST 상장 사업자의 요건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 사업자의 재무 상태가 건전해야 기초자산 운용과 처분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주권 외의 지분증권'을 상장시키는 사업자는 정기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공시 요건이 너무 엄격해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는 ST를 매수하는 것이지 ST 발행사의 지분을 매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시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초자산 관리 태만을 방지하기 위해 발행사가 자기 발행 ST의 일정 비율을 꼭 소유하게 하는 방안을 거래소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요건에 대해 이견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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