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산업 수요와 상관없이 학과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교수사회를 예로 들며 “한국 사회의 기득권이 신산업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총재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포럼에서 ‘글로벌 경제 동향과 기업의 대응’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산업 전환을 위해서는) 새로운 분야의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교수들은 자기 학생 TO(정원)는 놓치기 싫고, 그러니까 수요가 많은 쪽에 학생들이 가는 게 아니라 교수들의 숫자대로 (학과 정원이)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인 거시경제 안정이나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은 한국은행이 큰 틀에서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떻게 잡느냐는 거시·통화정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 번 취업하면 평생직장이 되는데 이는 산업 변화에 유리한 구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해고되고, 그 기간 정부가 (생계 일부를)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있는 상태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면서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총재는 “한국이 일본 경제를 따라잡았다고 하지만 ‘소득’에 국한한 얘기”라며 “보유한 재산을 보면 일본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버블(거품)이 붕괴되기 전인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반으로 해외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겹친 한국은 2050년 무렵부터 일본보다 인구 대비 고령인구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층의 역동성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한국의 젊은 층이 훨씬 역동적이고 K팝 같은 것이 발전하고 있다”며 “장점을 갖고 노력해서 일본처럼 20년 고생하지 않고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후부터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및 구조개혁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저출산 고령화로 기업 경쟁력이 둔화하면 성장률이 하락해 경제 규모 순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저출산을 정해진 미래로 여기지 말고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과거 중국 특수에 취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산업 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2017년부터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한 원인은 미·중 갈등 때문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라며 “중국 특수에 10년 넘게 익숙해지고 좋은 단물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란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한국) 기업이 중국에 가서 낮은 임금과 큰 시장에 만족했다”며 “돈을 많이 벌었지만 산업이 한 단계 높은 단계로 가야 할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시장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당분간 내린다고 얘기하긴 어렵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크게 기대하지 말라”며 “연말까지 상황을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 목표치인 2% 근처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두 차례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3개월간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도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전망에 관해서는 “속도가 문제지만 반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중 경제가 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데, 미국 경제는 생각보다 성장률이 높아질 것 같아 우리에게 좋은 뉴스”라며 “반면 중국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하반기나 내년 성장이 조금 더 불확실할 수 있다”고 했다.
강진규/제주=황정수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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