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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독일 최대 부동산 기업인 보노비아는 모든 신규 건설 프로젝트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주택 개발 비용이 큰 폭으로 치솟았다는 이유에서다. 보노비아 이사회 멤버인 다니엘 리들은 “㎡당 5000유로의 건설 비용을 충당하는 데 필요한 임대료가 1년 새 ㎡당 12유로에서 20유로로 올랐다”며 “평균 임대료가 ㎡당 7.5유로인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고 말했다.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의 공업 도시 도르트문트에선 한 주택조합(Spar- und Bauverein Dortmund)이 최근 아파트 건설 계획을 접었다. 2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조합은 1893년 노동자들에게 싼값에 주택을 공급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다. 조합의 최고경영자(CEO)인 프란츠-번트 그로세-빌데는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주택시장은 분명히 가라앉고 있다”며 “오늘 내려진 보류 결정은 2~3년 후 상당한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주택시장이 극심한 공급난에 직면해 있다. 인플레이션과 고(高)금리, 노동력 부족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개발업자들이 줄줄이 공사 계획을 포기하고 있어서다. 독일 경기가 공식적으로 침체기에 진입한 가운데 2년 전 주택 부족 문제 해결을 공약했던 올라프 숄츠 총리의 근심도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FT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독일의 신규 주택 공급량은 29만5300채로 집계됐다. 독일주택산업협회(GdW)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준공 건수는 각각 24만2000채, 21만4000채로 예측된다. 1950~2022년 평균치(40만5000채)의 반토막 수준이다.
현재 독일에선 수요 대비 공급 부족분이 70만채에 달한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엠피리카 레지오에 따르면 베를린과 함부르크, 뮌헨 등 주요 도시에선 각각 2만3177채, 1만3632채, 1만577채의 주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도시에선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주택 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투자도 위축되는 추세다. 지난해 주택 건설 부문 투자액은 전년 대비 8.5% 쪼그라든 90억유로(약 12조9000억원)였다. 도르트문트 주택조합도 연간 투자 예산을 1000만유로 규모로 깎았다. 그로세-빌데 CEO는 “계획 중인 다른 모든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신규 개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이는 지난 15~20년간 우리의 관행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일”이라며 “건설 비용 증가와 더불어 정부 보조금까지 줄어들고 있어 투자 회수율이 낮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전망 역시 어둡다. 건설사들의 신규 수주 실적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건설산업연합(FIEC)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건설사들이 체결한 공급 계약 규모(실질 기준)는 전년 대비 9.7% 감소했다. 건설업 리드타임(발주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긴 점을 고려하면 이는 장기 침체 가능성을 가리키는 신호로 해석된다.
독일 건설업계는 현재 ‘퍼펙트 스톰(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는 평가다. 금리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공급망 혼란까지 더해지면서 건축 자재의 비용이 큰 폭으로 뛴 영향이 주효했다. 숙련 노동자도 턱없이 부족해 건축 시한을 준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독일 부동산 관련 협회인 BFW의 디르크 잘레브스키 회장은 “2024~2025년 전망은 재앙적(catastrophic)”이라며 “개발 수요가 급격히 가라앉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건설산업협회(HDB)의 팀-올리버 뮐러 회장도 “현재 건설사들의 주문 대장은 내년까지 꽉 차 있지만, 새 주문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도 작용했다. 독일 엘베강 인근에서 대규모 주택 단지를 짓고 있던 함부르크의 한 주택 협동조합은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인 140채 건설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이 합의 피터 케이 CEO는 “창문의 주재료가 시베리아산 낙엽송이었는데, 대(對)러시아 제재가 취해지면서 재료가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며 “대체재로는 오크를 써야 하는데, 가격이 훨씬 비싸다”고 말했다. 잘레브스키 회장은 “전쟁 영향을 고려하면 작년 실적은 성공이라 봐야 할 정도”라고 했다.
숄츠 총리는 2021년 9월 총선 출마 당시 매년 40만채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임기가 절반 넘게 지난 시점에서 이 약속은 지켜질 기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독일 정부는 기후 친화적 건설 프로그램을 위한 20억유로 규모의 보조금 프로그램과 더불어 2026년까지 공공 주택 건설에 145억유로를 쏟아붓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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