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뚫고 중국서 성공 신화 쓰는 '건방진 김한국'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3-07-19 12:00   수정 2023-07-19 13:25


한국 면세점의 ‘슈퍼 갑’으로 불리는 ‘따이궁(代購)’이 요즘 싹쓸이 표적으로 삼는 브랜드가 있다. ‘탬버린즈(Tamburins)’다. 향수, 디퓨저, 핸드크림이 이 브랜드의 주력 상품인데 면세점 매장에 물건이 들어오기만 하면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로 인기다. 시쳇말로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LG생활건강의 ‘후(侯)’ 등 한때 중국 뷰티 시장을 휩쓸었던 대형 브랜드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터라 탬버린즈의 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탬버린즈는 안경을 ‘아이웨어(eye wear)’의 경지로 끌어올린 젠틀몬스터의 창업자 김한국 대표의 뷰티 야심작이다. 혐한(嫌韓)의 물결이 몰아치는 걸로 알려진 중국에서 그가 연달아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럭셔리 시장을 현장에서 체득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한국 대표와의 특이했던 첫 만남부터 소개한다. 2021년 가을께 그를 아이아이컴바인드(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등을 운영하는 법인)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 장소부터 특이했다.

외부 손님이 오면 안내하는 곳이라는데 접견실이라는 통념 자체를 거부하는 곳이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김 대표와 필자와의 사이에 있는 테이블엔 실물 크기의 악어가 있었다. 악어를 캐릭터로 만든 소품이 아니라 실제 악어가 떡하니 테이블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신문에 게재할 사진을 찍을 때도 김 대표는 ‘그만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상하의와 안경까지 검은색으로 착장한 그와 작은 실랑이를 벌였는데 이유는 손 때문이었다. 그는 반드시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 인터뷰 사진의 관행을 완전히 깨는 요구였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에 맞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한국은 꽤 오래전부터 중국 시장을 탐구했다. 어쩌면 2017년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으로부터 600억원 투자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을 지도 모른다. LVMH는 럭셔리 시장의 보고로서 중국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는 중국 최대 유통사인 화롄 그룹의 자회사 SKP와 손잡고 베이징과 청두에서 백화점 공간 디자인을 직접 설계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몸으로 느꼈다. 예술과 결합한 김한국의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은 이미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검증을 받은 터였다.
모든 평범함을 거부하는 파격으로 명품의 반열에
김한국은 2022년 초 상하이시 징안구 후아이하이 대로의 고급 쇼핑몰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젠틀몬스터 하우스 상하이(HAUS SHANGHAI)’를 열었다. 4층짜리 단독 건물이다. 탬버린즈는 이 건물 4층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마련했다.

올해로 출시 5년 차인 탬버린즈는 지난해 첫 번째 해외 진출의 장소로 상하이를 선택하면서 젠틀몬스터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따랐다. 상품이 아니라 예술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하우스 상하이에서 열린 후각 전시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TAMBURINS Olfactory Archives의 첫 번째 향초 시리즈’로 홍보한 이 전시회를 통해 김한국은 탬버린즈를 단숨에 ‘K향수’의 대표 주자로 올려놨다.

탬버린즈가 혐한이란 엄청난 장애물을 뚫을 수 있던 것은 중국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서다. 내용물을 짜다 만듯한 울퉁불퉁한 핸드크림 용기 등 모든 평범함을 거부하는 파격은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도 흉내 내지 못하는 차별화 포인트다.

뷰티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건 한국에서 만든 향수가 해외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탬버린즈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만든 안경에 예술적인 감각을 씌워 해외 명품 브랜드 안경과 비슷한 가격에 판매한 전략이다.

김한국은 블랙핑크 제니를 모델로 기용해 탬버린즈를 향(香)의 브랜드로 각인시켰다. 뷰티 대기업들이 화장품부터 런칭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식이자, 향수는 유럽과 미국 뷰티업체가 지배한다는 통념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뷰티는 세대 교체 중
김한국의 성공 방정식을 대기업이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핵심 전략은 파격과 예술적인 움직임(MOVE)이다. 취향을 선도하는 마니아층을 집중 공략할 수 있는 상품을 소량으로 생산해 희소성을 극대화한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명품화’한다는 점에서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과 닮았다.

제니를 광고 모델로 쓰면서도 예술을 입혀 효용을 극대화했다. 제니가 주연으로 나오는 런칭 영화를 만드는 식이다. 국내에 유통할 때도 백화점엔 아예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나 이커머스의 뷰티 명품관에 입점했다. 중국에서도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티몰을 중심으로 온라인 판매를 전개 중이다.

덕분에 아이아이컴바인드의 화장품 부문 매출은 지난해 576억원으로 전년(279억원) 대비 두 배가량 증가했다. 전체 매출액 역시 4100억원으로 전년(3220억원)에 비해 27%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21년 583억원에서 지난해 674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다만, 중국 법인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이아이컴바인드 중국 법인은 지난해 907억원의 매출에 18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글로벌 뷰티업계에선 탬버린즈의 잠재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K뷰티의 세대교체는 이미 진행 중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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