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韓 노사관계 민낯 보여준 ILO 총회

입력 2023-07-17 17:58   수정 2023-07-18 00:07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11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가 열렸다. 각국 노사정 대표의 연설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국도 노사정이 모두 참석했는데 극심한 노사정 갈등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동계는 우리 정부의 노동개혁과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노동 탄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노동계 대표가 국제무대에서까지 산업현장 법치주의를 왜곡하는 발언을 쏟아냄으로써 한국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정부 대표는 정부 정책이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것이라며 노동계 대표의 발언을 반박했다. 특히 “파괴적 행동, 물리적 충돌 등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습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노동계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청했다. 경영계 대표로 참석한 필자도 “노동계가 주장하는 정부의 노동 탄압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우리 노사관계는 이념적·투쟁적 노동운동으로 인해 40년 가까이 대립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기구에서 평가한 한국의 노사협력 지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는 141개국 중 13위였으나, 노사협력 순위는 130위로 세계 최하위 수준(2019년)이다. 또 파업으로 인해 최근 10년(2012~2021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근로손실일수(국제노동기구)는 38.5일에 달했다. 영국(12.7일), 독일(8.3일)보다 많고 일본(0.2일)의 약 190배 수준이다.

대립적 노사관계, 파업 만능주의, 노동계의 빈약한 준법의식은 국내 기업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 유치도 어렵게 한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하나같이 성토한다. 한국은 외국 기업에 ‘강성노조 탓에 회사 경영하기 힘든 나라’로 각인돼 있다. 이런 대립적 노사관계는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까지 저하시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후진적 노사관계다.

해법은 명확하다. 산업현장의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노사 간 힘의 균형 회복을 위해 법·제도를 개선하며, 노사관계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해 우리 노사관계의 수식어를 ‘대립과 갈등’에서 ‘협력과 상생’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선 산업현장의 법치주의를 굳건히 확립해야 한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통해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불법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불합리한 법·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체근로 금지, 쟁의행위 시 사업장 점거, 사용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형사 처벌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노사관계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치권이 발을 빼야 한다. 정치권이 자주 개입하면 노사 모두 자율적 노력보다는 정치권의 중재에 의존하는 중독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총(AFL-CIO)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원칙을 세운 것도 정치권은 단기적으로 노동계를 자극해 노동운동을 격화시킬 뿐 장기적으로 노사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ILO 출장을 마치고 노사관계 개선을 이야기해볼 틈도 없이 이달 초부터 민주노총이 또 ‘총파업’에 들어갔다. 특히 올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파업을 노골화했다. 우리는 언제 선진국 수준의 노사관계를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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