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해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이었다. 명품 구입에 1인당 325달러(모건스탠리 추산)를 써 미국 중국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경기 급랭 등의 여파로 사정이 확 바뀌었다.
주요 백화점 명품 매출이 속속 감소세(전년 동기 대비)로 돌아서고 있다. ‘명품족’ 사이에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브랜드별 희비도 엇갈리는 분위기다.
명품족은 소비 금액을 줄이되 꼭 사야 할 브랜드의 구입은 이어갔다. 한국경제신문의 ‘빅3’ 백화점 취재 결과 최고급 명품의 대명사로 굳어진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중 에르메스가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20%대)을 보였다.
에르메스가 시장 조정기에도 돋보이는 성장세를 나타낸 건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하는 데 성공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에르메스는 리셀(되팔기) 열풍으로 중고 거래 물량이 늘어나자 지난해 3월 재판매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구매 이력이 일정 기준을 충족한 고객에게만 인기 제품을 파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통해 ‘연간 매출 증가율 20% 유지’라는 내부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디올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의 후계자로 첫손에 꼽히는 첫째 딸 델핀 아르노가 이끄는 브랜드다. LVMH는 2월 델핀이 디올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후 “샤넬에 필적하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며 공격적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 디올이 가장 공을 들이는 국가로 손꼽힌다. 2017년 9개였던 백화점 매장을 26개로 늘린 것을 비롯해 서울 성수동에 1500㎡ 규모의 초대형 플래그십을 열어 명품업계를 놀라게 했다. “극단적으로 여성스러운 디올 이미지가 국내 소비자에게 먹혀들었다”는 게 패션업계 분석이다.
샤넬은 ‘리셀 거래가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에 흠집이 난 것 아니냐’는 게 관련 업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부티크에서 사는 브랜드가 아니라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구입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겼다는 얘기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엔데믹 선언 후 샤넬 인기 품목 중 상당수가 중국에 먼저 풀리기 시작한 것도 한국에서의 약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구찌는 트렌드 변화 대응에 실패한 게 요인으로 거론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15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맡아 로고가 전면에 드러나는 디자인으로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최근 몇 년간 ‘미니멀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실적이 저조했다.
이 같은 브랜드별 실적 흐름은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요 럭셔리 브랜드의 지난 1분기 실적을 종합한 결과 디올을 앞세운 LVMH와 에르메스 매출이 각각 두 자릿수(11%, 22%) 불어났고 케링그룹은 구찌 부진의 영향으로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미경/양지윤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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